▲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금산문화원장 |
'어떤 얘기를 할 것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내가 갖고 있는 소아과의사라는 직업과 초등학교 교사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제법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탁석산 박사는 사석에서 이런 농반, 진반의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돈 받고 야단치는 직업은 의사와 학교 선생밖에 없다.”
의사가 환자에게 자기 말 안 듣는다고 야단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풍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과거에 비하면 무뚝뚝하고 야단 잘 치는 의사는 설 곳이 없어지고 있다.
체벌 금지가 결정된 이후부터 매 맞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를 매스컴에서 접하게 된다. 무릇 교육에는 사랑과 함께 규율이 병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사랑과 자율만 강조하다 보니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매를 들고 학생을 지도할 수 있을까? 세상은 이미 변했고, 다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선생님들이 변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선생님이 갑이던 시절에는 매를 들어도 괜찮았지만 이제는 모든 분야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갑이 갑일 수 있었던 힘과 권력은 대부분 정보의 독점에서 나온다. 그렇지만 지금은 트위터에 떠오르는 신상털기에 들어가면 세상 없는 인물도 '한 방에 가버리는' 세상이다. 선생님이 학생에 대해 갑으로 남으려면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학생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교사들 스스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인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도 젊은 시절 소아과의사 공부를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면서 세상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가진 내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요구하던 주문은 절대 거역불가의 명령이었고, 그 명령이 이행되지 않으면 마구 화를 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의사로서 '철'이 들기 시작했고, 내가 전능자이기는 커녕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은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다.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해주는 얘기는 상황을 설명해주고 옳은 방향으로 가도록 조언해주고 바른 길을 찾아가는 동반자라야 한다는 생각을 나이 들면서 하게 되었다.
돈 받고 야단치는 두 직업군 중 하나에 종사하기 때문에 남이 아닌 동료에게 말하듯이 하는 얘기지만 이제는 정말 선생님들이 변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지금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학생과 사회와 제도가 바꾸어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지식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학생이 지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공평무사한 지식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 이 세상에 대해 학생 스스로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 아이들이 내 사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아야 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의 표정에서 즐거움과 고통과 불만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만 원만한 교육과 진료가 가능한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 이런 노력이 계속되어야만 환자에게 구박받는 의사, 학생에게 매 맞는 교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선생님들과의 대화에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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