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인석 수필가 |
지난 10·26 재·보궐선거를 계기로 기존의 정치사 판도가 완전히 뒤집혔다. 권위정치의 뿌리이자 본산이던 정당정치는 이제 의미를 잃었다. 정치, 행정경험도 없고, 또 정강(政綱), 정책(政策)도 없는 무소속후보가 기존의 정당 정치인들을 제치고 정치1번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민심이 드디어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민심을 외면해온 패거리정치 행태에 대해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그동안 정당 간에 쏠림현상은 있었지만, 민심이 정당정치를 완전히 부정하고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명색이 제1야당인 민주당은 후보조차도 내지 못한 채, 딱하게도 무소속후보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들러리집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여당인 한나라당역시 후보는 냈지만 표심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불 꺼진 잿더미 취급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기존정당의 존재가치가 부끄럽게 됐다.
더욱 민망한 건 무소속후보가 당선되자 손뼉을 쳐대며 득의만면해하는 야당대표 및 중진들의 속절없는 얼간이 행태를 보면서, 그동안 그들이 소리쳤던 정강이나 정책은 모두 허구였음을 드러냈다는 사실이다. 한때 집권여당이던 민주당이, 또 미래 수권정당임을 자처하는 제1야당대표가 무소속당선자에게 두 팔 벌려 아부하는 모습은 정강정책을 가진 공당(公黨)으로서 정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자학적 비굴함까지 보였다.
정치사(史)에 그토록 당당하던 정당정치 권위가 10·26재보선을 계기로 가을비 맞은 나그네 행색이듯 초라하게 주저앉고 말았다. 오만하고, 교활하고, 불안했던 정치인들 스스로가 불러들인 자승자박이다. 크고 작은 선거 때마다 통념 화된 공천비리 반복, 민생 속이고 등치는 거짓말공약 남발, 여야당 열거할 수 없는 부정비리 누적,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패거리정치현상에, 특히 젊은 층 세대들이 분노한 것이다. 정치도덕이나 정치질서, 급기야는 정당정치의 가치관까지도 정치인들 스스로가 짓밟아버린 셈이다.
공당정치의 무용론사조가 서울에서부터 열렸다. '도가니정치' 실망에 들뜬 민심의 신열(辛熱)이 드디어 터진 것이다. 정치사에 불행한 현상이다. 특정정당의 승패를 떠나 정당정치가 깨졌다는 것은 나라 건강에 문제다. 민주사회의 평등성차원에서 민초들의 새로운 결합이라고 보기엔 어쩐지 민망하다. 흥망성쇠는 필연이라지만 순리를 뛰어넘는 이치는 없다. 오죽하면 민심들이 정당정치의 존재가치까지 무시해버렸을까. 정치집단, 통치 집단이 더욱 각성해야 할 이유다. 정당정치 불신현상은, 마치 관객을 등판시킨 야구 구경과 다를 바 없다. 잠시 관중들을 웃길 수는 있으나, 진실한 경기는 볼 수 없다. 불건전 세력과도 야합을 불사하는 민주당은 집권 욕에 앞서, 명색이 제1야당으로서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한다.
정치는 믿음이다. 믿음이 깨어지면 균형도 잃는다. 정치 통치가 균형을 잃게 되면 민심은 이반하고, 뒷전에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무리는 따로 있다. 소통 없는 여당의 오만과 아집은 번번이 불신을 자초했고, 야당의 좌편향 선동과 지나친 반대 극성은 불안을 자초했다. 그때마다 북치고 나팔 불며 혼란스럽게 춤판을 벌인 것은 좌파들뿐이다. 날마다 '민주'는 외쳐대도 그들 속에는 '민주'가 없고 '불안'만 있었다. 선량한 민심들이 기존의 정당정치를 불신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총선, 대선의 기회가 불과 몇 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민심은 다시 벼르고 있다. 혼란과 불안을 선동하는 좌파정치, 민심을 외면하는 반민주정치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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