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미란 편집팀 차장 |
부글대는 배를 부여잡고 참는 것도 잠시, 아픈 딸을 등에 업고 아버지는 내달리셨다.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침쟁이 할아버지 댁으로.
웃음기 없는 표정과 무엇이든 찌를 기세로 치켜든 침, 그런 할아버지의 손에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다 내어주고서야 다시 찾을 수 있었던 뱃속의 평화. 침쟁이 할아버지와의 안 좋은 대면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계속해야 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등에 업혀 침 맞으러 가던 어린 딸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랬듯 배앓이 하는 딸을 업고 당직병원을 찾아 내달린다. 일찍 문 닫은 동네약국을 원망하며.
국민의 압도적 지지로 추진됐던 '감기약 슈퍼판매'가 사실상 무산됐다. “올바른 복약지도가 없으면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는 약사들의 항변에 설득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간사들이 여야를 초월한 대합의(?)를 도출했다. '가정상비약의 약국 외 판매'를 골자로 한 약사법 개정안을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않기로 한 것. 국민 80%의 찬성이 약사 6만여 명의 힘 앞에 무력해지는 순간.
병원 문 닫는 동시에 셔터 내리는 약국들, 유명무실한 휴일 당번제. 소소한 불편함은 둘째 치고, 종합감기약 몇 상자쯤은 선뜻 내어주는 약사들의 모습에서 '올바른 복약지도'라는 명분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 눈 감은 국회의원들의 선택도 여론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약사표를 의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에 “국민이 무섭나, 약사가 무섭나 두고보자”며 잔뜩 벼르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 앉은자리가 마냥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속보이는 오지랖(?)'에 발목잡힌 '감기약 슈퍼판매'. 이런저런 이유로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도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는 법, 구급약상자에 새로 채워 넣을 약품 목록을 적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어본다.
황미란·편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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