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사람. 영어나 중국어, 일어를 우리말로 번역해주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 통역의 영역에 분명 수화통역도 있다.
“수화는 손으로 말하는 언어입니다. 영어나 일어처럼 표현 방법이 한국어와는 다른 외국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 점에서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라는 외국어를 쓰는 소수민족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 청각장애인학교의 인권침해를 다룬 영화 '도가니'도 한글자막을 제공하는 상영관이 턱없이 적어 정작 청각장애인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수화통역사 이영경씨. 이씨는 청각장애인들도 영화를 즐기도록 자막을 넣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사랑합니다'를 수화로 하고 있는 이영경씨. |
대전KBS TV 뉴스의 수화통역을 마치고 방송국을 나서는 이씨를 만나 수화통역사로서의 애환과 바람을 들어봤다.
“수화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5분대기조가 돼야 합니다. 새벽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 도로에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을 때도 청각장애인들은 수화통역사를 필요로 하지요.”
짜장면을 시킬 때, 홈쇼핑을 보며 구매하고픈 상품이 있을 때 청각장애인들이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부탁하면 언제나 망설임 없이 들어준다는 이씨.
대외적인 일부터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까지 청각장애인이 건청인과 마주하는 일에는 늘 함께 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이씨는 서로를 가족처럼, 어쩌면 가족보다 더 가깝게 여기고 있다고.
1985년 대학시절, 수화동아리에 들면서 수화와 인연을 맺게 된 이씨는 수화를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서울농아교회'를 찾아가게 됐고, 그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이씨의 남편은 청각장애인으로 현재 '대전농아인교회'의 목사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 중에 청각장애인이 있어서 그들의 애환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씨, 수화통역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를 묻는 기자에게 청각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대화를 통역할 때라고 답했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수화통역사를 제3자라며 거북해 했고, 그로인해 단절된 청각장애인과 가족들의 의사소통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통역으로 묵은 체증 풀리듯 가족들 서로가 이해하고, 가족들이 수화를 배우려할 때는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 싶다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한다.
이런 보람으로 청각장애인들 곁을 지키고 있다는 이씨는 수화통역을 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청각장애인을 기피하고, 또 편견을 갖고 대한다는 것이다.
“단지 청각장애만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의 언어인 수화 외에 제2외국어 배우듯 한국어를 배워야하기 때문에 학습속도가 느리고 아주 어렵게 배우긴 하지만 배울 수 없는 게 아니거든요.”
건청인에 비해 몇 배의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 청각장애인, 그들을 돕기 위해 더 많은 수화통역사가 필요하지만 수화통역을 전문분야가 아닌 봉사활동으로만 여기는 사회인식과 열악한 처우 등으로 수화통역사가 되는 걸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회인식이 변하고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수화통역을 할 것이라며 자신을 기다리는 청각장애인들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아름답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 수화통역사 이영경씨는?
1985년 수화를 배운 이후 지금껏 청각장애인들 곁에서 수화통역을 해오고 있다. ‘대전농아인교회’에서 교인들의 수화통역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들의 교육을 위해 ‘농사랑공부방’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대전시청과 충남도청 인터넷 뉴스를 비롯해 대전KBS 아침뉴스 수화통역사로도 활약하고 있으며 공무원연수를 위한 수화강의도 진행했고, 침례신학대학 출강을 비롯해 수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등 청각장애인들에게 보다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주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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