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영효 산림청 차장 |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면 익을 대로 익은 은행 열매도 천지로 떨어진다.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으로 잘 익은 은행 열매는 물러진 과육을 벗기면 은백색 종자가 나오는데 그 모양이 살구를 닮았다. 종자의 색과 모양 때문에 은행(銀杏)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은행나무는 최소 20년생쯤 돼야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단풍과 수형 그리고 내건성, 내한성에 내공해성까지 강해 가로수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은행나무는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가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7000만년 전 공룡시대부터 지구상에 터를 잡은 식물로 그 사이 몇 번이나 있었던 혹독한 빙하시대를 지나면서도 당당히 살아남았기에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린다.
은행나무는 오랜 역사만큼 독특하고 인간에게 유익한 나무다.
은행잎과 열매에는 징코플라본글리코사이드라는 성분이 함유돼 있는데 이를 추출해 혈액순환 개선제로 사용한다. 과육을 벗긴 종자는 식용 및 약용으로 쓰이는데 은행잎과 함께 피를 맑게 하고 막힌 혈관을 뚫으며, 천식 기침에도 좋다고 한다. “하루 5알씩만 복용하면 겨울 감기는 끝”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은행 열매의 독특한 냄새 때문에 이를 철거하거나 옮겨달라는 민원도 자주 발생한다.
은행 열매의 냄새는 껍질에 포함된 비오볼이라는 물질에서 나온다. 인간을 포함해 대부분의 동물들이 싫어하는 이 냄새는 맛이 좋고 영양까지 풍부해 초식동물의 먹이가 되기 쉬운 은행나무가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선택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린다. 가로수로 수나무만 심으면 열매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테지만 열매가 열리기 전에는 그 암수를 구별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려는 다양한 가설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가지가 위로 뻗은 것이 수나무고 아래로 처진 것이 암나무라는 얘기다. 오랜 세월 해마다 무거운 은행이 달린다면 그 무게 때문에 가지가 아래로 처질수도 있겠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지금까지 나온 가장 확실한 암수 구별법은 5월께 잎과 함께 피어있는 꽃을 관찰하는 것이다. 은행나무 꽃은 어린 잎 사이에 피는데 5월초 연두색의 아주 작은 도토리가 두 개 붙어있는 것처럼 생긴 암꽃이 달리면 암나무고 이삭 모양의 꽃차례를 이루는 수꽃이 달리면 수나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미 심어진 나무의 암수를 구별하는 것이므로 별로 의미가 없다.
이런 은행 열매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나왔다는 반가운 얘기가 들린다.
올해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어린 은행나무 잎을 이용해 암수를 조기에 식별할 수 있는 'DNA 성감별법'을 개발했다.
은행나무 수나무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DNA 부위를 검색할 수 있는 'SCAR-GBM 표지'를 개발한 것이다. 이 방법을 쓰면 1년생 이하 어린 은행나무에서도 암수를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 어릴 때 알 수 있으므로 가로수로는 수나무만을 쓰면 된다. 선별된 암나무는 은행 열매 생산자들에게 보급하면 농가 소득 증진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열매의 고약한 냄새를 맡지 않으면서도 은행나무 단풍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때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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