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그러면서 몇 년 전 영국의 '브리티시 갓 탤런트(British Got Talent)'라는 TV프로그램에 나온 폴 포츠가 생각났다. 심사위원과 관중 앞에서 폴 포츠가 못생긴 외모, 어눌하고 자신 없는 말투로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했을 때 아무도 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심금을 울리는 깊고 감성적인 목소리에 심사위원들과 관중들은 놀라움의 탄성을 지르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사건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 말했듯이 “석탄이 다이아몬드로 변신하는 모습”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을 함께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사회가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재능을 키워온 누군가에게 다이아몬드로 변신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즉 '경쟁'이 '기회'를 의미할 때 사람들은 감동한다.
우리 사회, 특히 교육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공정한가?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동일한 시험지로 평가받고 있으니 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올해 수능이 치러진 지난 10일, 대학입시 거부를 선언한 '투명가방끈모임'의 항변을 들어보자. 대학입시를 “수십만명을 점수, 등급으로 줄 세우고 우리의 삶에 가격을 매기는 상품화 과정”이라고 규정하고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며 학교를 서열화 시키는 입시경쟁 속에서 참다운 교육과 인권이 매몰된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잭 캔필드가 소개한 '동물학교'는 여러 동물들이 입학해 똑같은 과목을 똑같은 방식으로 테스트한다. 토끼는 달리기를 잘하지만 수영에서 낙제점을 받는다. 오리는 수영실력이 선생님보다도 좋지만 달리기에서 낙제점을 받는다. 독수리는 나무꼭대기까지 기어오르기 과목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날아오르기를 고집하다가 문제 학생으로 지목받는다. 이들은 모두 방과 후에 남아서 자신의 취약과목을 집중 훈련하지만, 세월이 지나 졸업할 때가 되어서 모두 자신들의 취약점은 아주 조금 나아진 반면 원래의 장점은 잃어버린 그저 그런 동물들이 되어 버린다.
과연 수능은 '공정한 경쟁'인가? 지금과 같은 대학입시는 동물학교처럼 누군가의 잠재력과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제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무수히 많은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수능이라는 하나의 경쟁이 너무나 많은 것을 좌우하는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모두가 수능의 마법에 걸려있는 한 이 사회를 공정하다고 느낄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울랄라세션과 허각의 성공은 이 사회가 수능과 같은 단 한 가지 경쟁만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경쟁을 제공할 수 있으며, 그것이 누군가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요계에 데뷔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을 뽑는 오디션에 합격하는 것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음악적 재능은 뛰어나지만 키 작고 평범하게 생긴 사람에게 '경쟁'은 결코 '기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울랄라세션이 탄생하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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