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 언론학살 음모… 창간 23년만에 '꺾여진 펜'

유신정권 언론학살 음모… 창간 23년만에 '꺾여진 펜'

“동아일보도 4층인데 지방신문이 12층이냐” 박정희 충남도 순시 이후 거센 외압 시달려 영구집권 야욕에 희생양… 15년 지나서야 복간

  • 승인 2011-11-21 17:44
  • 신문게재 2011-11-22 12면
  • 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前 주필
[안영진 전 중도일보 주필의 중도일보 60년] 6.'1도1사' 신문통폐합과 1973년 강제폐간

1960년대 끝자락, 신문사에는 불길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깊숙한 곳에서 '신문학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설이 그것이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그들이 이번엔 영구집권을 위해 1도1사 신문통폐합을 획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시절 이야기다. 한 번은 명사초청 좌담회를 한다기에 나가보니 어쩐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 자리에는 청와대특보와 선글라스를 낀 낯선 얼굴. 거기에 지방인사는 3명뿐이었다. 김영성 충대법정대학장, 황제주 학무국장과 필자가 마주 앉았다.

황제주는 공화당 창당 시 사전조직 주역으로 은행나무동지회 충남대표였다. 이날 좌장은 법학자인 이항녕 박사였다. 그는 동북아정세와 얼어붙은 남북관계 그리고 국내정치 순으로 이어갔다. 긴장한 탓인지 사뭇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눌변이라 할 만큼 매끄럽지 못한 어조로 나왔다. 2시간 이상 경청하다 필자가 불쑥 한마디 던졌다. 박사님! 동북아정세와 남북관계가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하고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를 쉽게 말씀하시지요! 저 같은 비전문가는 요령부득입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이 박사의 얼굴엔 경련이 이는 듯했다.

이어 김영성이 한 수를 더 떠 저는 학자의 양심으로 더 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 바람에 분위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좌담을 마치고 식당으로 가는데 황제주가 안공! 그렇게 나가다간 다치는 수가 있어. 옆구리를 쿡 치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유신의 선무공작은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국은 얼어붙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다. DJ가 두 번째 박정희와 대결할 때 이렇게 폭로했다. 박정희는 영구집권을 위해 총통제를 꿈꾼다고 외쳐댔다. 그때 자의반타의반의 외유를 마친 JP가 전면에 나와 와이셔츠 민주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야당과 반체제인사들이 들고 일어나 조용한 날이 없었다. 문인들도 자유결의실천을 외치다 구속되는 일이 허다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폄하 발언 또한 도를 넘어 섰던 그런 시기였다.

-박정희의 철학은 무엇인가? 히틀러가 장성보다는 상사(하사관)를 더 좋아했다더니, 박정희는 통대위원을 좋아한다고 비아냥댔다. 각종 행사 때 주최 측이 애를 먹는다며 면서기 출신 통대위원이 국회의원, 시장, 군수보다 상석에 앉힌다고 꼬집었다.

히틀러는 감옥에서 갈고 닦은 그 나름의 철학 나의 투쟁을 내놓았지만 박정희는 무엇이 있느냐고. 어떻든 영구집권을 위해 언론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중도일보는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경암빌딩 시대가 전성기=그 무렵 중도일보는 경암빌딩시대를 구가했다. 한마디로 그때가 전성기였다. 하지만 시시각각 외압이 가해졌다. 성자필쇠(盛者必衰)라는 고사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때 돌연, 편집국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제작을 거부하며 간부들은 나가라고 시위를 벌였다.

▲ 중도일보 앞에서 이웅렬 사장<사진 가운데>과 필자<맨 오른쪽>.
▲ 중도일보 앞에서 이웅렬 사장<사진 가운데>과 필자<맨 오른쪽>.
기자들은 연일 충남대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며 외쳐댔다. ①사장은 중도일보 매각여부를 밝혀라 ②편집국장과 비서실장, 정치부장, 경제부장, 사회부장을 즉각 사면하고 ③향후 운영계획을 밝히라는 청천벼락과 같은 소동이었다.

기자들을 설득해 보았으나 통하지 않았다. 데모대의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필자와 성기훈(현 상임고문) 두 사람이 신문을 제작했는데 그 때 두 사람에겐 순진파라는 닉네임이 뒤따랐다. 제대로 지면을 꾸릴 수가 없어 통신과 지방기사로 메웠다.

오죽 다급했으면 전무이사가 공장을 오르내리며 원고 심부름을 했겠는가. 다음날 오후 제작을 거부, 공을 차던 데모대가 필자에게 항의했다. 운동복에 축구화 차림의 그들에게 조금은 겁이 났지만 이렇게 말했다.

판을 깨자는 행동들이 아닌가. 나는 있는 날까지 지키다 내손으로 폐간사를 쓰고 떠날 생각이니 개의치 말라고…. 국장과 부장급은 데모대의 위압에 눌려 회사근처에 얼씬도 못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이 와중에 필자를 모함했던 모양이다.

국장과 부장급 모두를 나가라며 유독 부국장(필자)만 제외한 것은 그가 폭도(데모데)와 내통, 조종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이렇듯 필자는 협공을 받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흘째가 되는 날이던가. 필자는 국장 집을 찾아가 사표를 썼다. 지금 이런 판에… 하고 주저했지만 개의치 않고 내밀었다.

1차적인 책임은 기자 단속을 못한 부국장에게 있지만 국장도 도의적 책임이 있는 만큼 사표를 쓰라는 말에 수습 후에 쓰는 게 어떻냐며 망설였다. 어서 쓰시지요! 하고 다가앉자 사표 문맥을 뭐라고 쓸까 하기에 지금 문맥을 따질 때입니까? 하자 그는 사직원을 썼다.

그는 한학에 능한 명필이기도 했다. 또 따뜻한 가슴을 지닌 선비였다.

▲유례없는 두 신문의 법정싸움=사주 측에선 데모대를 이단시했지만 기자들은 명분을 내세웠다. 신문이라는 공기를 사원(기자들) 몰래 팔아넘기려 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절규했다. 그것은 사원의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반면 사주입장은 어떤가. 어차피 문을 닫을 운명이라면 간판 값이라도 챙겨 사원의 퇴직금 정리를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사주는 밤을 세워가며 고민했을 께 뻔하다. 흘러나온 이야기로는 줄곧 압력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당당한 사주요, 잘나가던 신문사를 내놓은 것은 압력 때문이었다. 사장의 기가 꺾인 것은 70년 초였다고 보아진다. 박정희 대통령의 충남도 순시 때 일이다.

도지사의 브리핑을 받고 나서 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유성호텔로 가던 중 건축 중인 중도일보건물을 가리키며 웬 건물이냐고 묻자 중도일보라는 답에 그럼 이웅렬의 것인가? 그렇게 돈이 많나? 동아일보도 4층인데 지방신문사가 12층이라니 고개를 갸우뚱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알아서 기는(과잉충성) 시대였으니 압력이 가해졌을 게 뻔하다. 이사장은 이때부터 고민을 하는데 매수자가 나타나 은밀하게 계약을 맺었다. 이에 기자들이 들고 일어나 신문제작을 거부하며 소요를 일으킨 사건이다.

그 상대는 서울대 치과대학장 김동순이었고 중개인은 언론인 출신 이순업이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했던가. 그 배후에 대전일보가 있다는 걸 알고 즉각 무효소송을 냈다. 위계에 의한 계약 무효소송을 말한다. 세인의 눈을 끌던 사건이다.

법정에서 양측 변호인의 공방은 사뭇 치열했다. 물건을 파는데 누구한테는 팔 수 있고 누구한테는 못 팔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는 상법, 민법 어디에도 통하지 않은 논리라고 상대에선 역공을 폈다. 이때부터 압력은 거세게 뒤따랐다. 그렇게 해서 '1도1사' 통합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중도일보 문을 닫다=운명의 날, 1973년 봄 충청인의 사랑을 받아온 중도일보가 폐간사를 쓰고 문을 닫았다. 정치적 중립, 정론직필, 지역사회개발을 외치던 신문이었다. 창간 23년 만에 중도일보는 복간까지 15년 간은 동면(冬眠)기간이었다. 그것은 살육이요, 유폐인 동시에 사장(死裝)이었다. 그것은 물론 매매형식을 취한 강제통합이었다.

20여 년 간 사원들이 피땀 흘려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발자취는 회색 포장에 새긴 회색문자의 기록처럼 일식(日植)을 맞는 그런 상황이었다. 기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한 시대 중도일보를 지켰던 얼굴들을 무작위로 열거해보자.

주필로는 이한용, 김형균, 박근목, 편집국장은 추식, 이일찬, 박남호, 김종선, 이지풍이 거쳤다. 그리고 이항복, 이강국, 황선재, 서정의, 신한철, 성만복, 박상기, 조준호, 이기수, 윤성한, 이용웅 등이 활약했다. 이들은 한 시대 언론계의 별이었다.

몸담았던 회사가 문을 닫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은 처량해 보였다. 폐간 전 전날이었던가. 사장실에 올라가자 자네는 고향에 중학교를 세웠다면서? 갈 데가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당혹스러웠다. 누가 또 모함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답을 피했다.

70년대 초 교육감을 통해 끌어온 것이니 공립이다. 옛날 읍 소재지까지 20리 길을 통학하던 생각해서 유치한 것이었다. 사사로운 이야기다. 그때 신문사를 내놓은 이웅렬 사장의 심정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해오는 이야기로는 불교신자인 그는 부처님을 찾는 일 외엔 사람 접촉을 꺼린다고 했다.

그러니 나가는 곳이라곤 경암빌딩 사무실뿐이었다. 거기서 이혜태(전 비서실장)와 타이피스트 외엔 사람만나길 꺼린다는 소문이었다. 애오라기 15년간을 그렇게 은둔생활을 했다. 당시 중도일보에서 대전일보로 건너간 것은 필자와 조준호, 성기훈, 권오덕, 이재현뿐이었다.

필자는 논설위원으로 일행들은 나이가 그러하다보니 기자발령을 받았다. 그들은 능력 있는 기자들이라 잘도 헤쳐 나가는데 필자만 허둥대며 적응을 못했다. 거기에다 말썽까지 부려 퇴출 직전 살아난 일도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다. 한 번은 회장실에 불려가 자넨 통 말이 없고 동료들과 어울리길 꺼린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가? 이에 그게 아니고 주눅이 들어 그렇다고 답했다. 왜 주눅은? 그 까닭을 설명했다.

중도일보 폐간 당시 회사를 지킨답시고 문 닫는 날까지 혼자(실은 성기훈과 같이) 신문을 만든 탓에 기가 죽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야. 회사가 어려울 때 외면하는 자가 문제지!라며 열심히 하라고 되레 격려를 하셨다. 법조계의 중진이요, 당시 충남재벌 2, 3위에 든다는 회장…. 인품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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