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필방거리에 유독 눈에 띄는 필방이 있다. '전통 우리 붓 4대째 제작'이라는 문구가 입구에 쓰여진 '백제필방'이다. 요즘도 대를 이어 붓을 만드는 장인이 있나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필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매장 뒤편의 공방에서 장대근(58) 대표가 반갑게 맞는다.
▲ 온 마음을 다해 붓을 만들기 때문에 가끔은 손님 오는 소리도 못 듣는다는 장대근 대표. 그래서 늘 마음과 붓은 일맥상통한다고 믿는다. 남들이 하지 않는 어려운 일,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그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
스스로 민족해야 비로소 상품으로 내놓는다는 장 대표, 4형제 중 장남인 그는 붓 만드는 아버지를 늘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할 일은 붓 만드는 일'임을 알았다고 한다.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 함께 붓을 만들자고 하신 아버지의 제안을 순순히 따랐다고.
이후 장 대표는 학교도 그만두고 붓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어릴 때부터 늘 보고 자라 그런지 몇 년 안 돼 붓을 만들 수 있었는데, 하지만 아버지의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붓인데도 장 대표의 붓은 사람들이 값을 쳐주지 않았다. 겉모양은 비슷해도 붓 끝에 실리는 힘이 달랐기 때문이다.
기술이 부족하단 걸 깨달은 장 대표는 그 후 피나는 노력을 했다. 좋은 붓 재료를 구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기도 했고, 붓모를 고르는 일에 세심함을 더했다.
수백 번 손이 가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한 자루의 붓을 수없이 만들어 보고 손끝으로 감각을 익힌 지 10년만에야 '붓이란 이렇게 만드는 거구나'하고 깨달았다는 장 대표.
붓 만드는 기술을 터득한 이후에도 좀 더 품질 좋은 붓, 서예가나 문인화가들에게 인정받는 붓을 만들기 위해 정진했다.
“20여년 간 이곳 필방거리를 지키고 있는데, 붓 만드는 장인이 점점 줄더니 7년 전 쯤부터 직접 붓을 만들어 파는 곳은 우리 필방뿐입니다. 대부분 중국산을 판다고 보면 되는데, 국산과의 구분이 힘들다는 게 안타깝지요.”
반제품으로 수입돼 우리나라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지는 중국산 붓은 원산지 표시를 하기에도 애매할 뿐더러 원산지 표시제도조차 없다는 게 아쉽다는 장 대표. 하지만 중국산 붓의 공세가 심해질수록 우리 전통기술로 만든 붓의 가치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로 장 대표는 옛 문헌을 참고해 왕비나 궁녀들이 궁중에서 사용했던 '홍화필'도 재현했고, 2003년엔 아기들의 배냇머리를 이용해 기념용으로 만드는 배냇머리붓 제작기술로 특허도 받았다.
“지금껏 한번도 붓 만드는 걸 후회한 적도, 부끄러워 한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 전통 붓 만드는 법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기록해서 남기고 싶은 포부가 있습니다.”
붓털을 만지지 않으면 하루가 안 간 것 같다는 전통 붓 장인 장 대표, 붓모를 고르는 그의 손 끝에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장인정신이 담겨있는 듯 하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 백제필방 장대근 대표는?
전북 전주출신으로 고교 2년생이던 1980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전통 붓 만드는 일에 뛰어들어 지금껏 전통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는 붓 장인이다.
1984년 대전 대흥동에 ‘백제필방’을 열고 정착,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100년 가업을 이어 오고 있으며 지금은 딸 지은씨가 4대째 전통 붓 만들기를 전수받고 있다.
2002년 궁중 여인들이 쓰던 ‘홍화필’을 재현해 제 32회 공예대전 및 제 5회 관광기념품 대회에서 서예용 붓 부문 대상을 비롯해 무역협회장상도 수상하였고, 올해 열린 관관기념품 공모전에서는 전통 옻칠을 가미한 붓으로 금상을 수상하는 등 전통을 지키는 한편으로 전통 붓 재현과 새로운 붓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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