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철모 뉴욕총영사관 내무관 |
훈구파와 사림파의 싸움, 사림파로부터 동인, 서인의 갈라짐 그리고 서인은 노론, 소론으로 분파되었다는 등 실리없이 명분에 집착해서 끊임없이 싸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백제의 근초고왕 시대 마한을 정복하고 바다 건너 일본을 개화시키고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에 중국땅에 요서를 개척한 것과 고구려가 대륙을 호령하던 역사는 아주 흥미있게 공부했었다. 아마 대부분의 학생들도 필자와 같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그 당시를 회고해 보면 정말 아쉬운 것이 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조선시대에 전개된 소위 사색당파싸움에 대해 배웠고, 또 구한말 세계사의 흐름에 뒤처져 모진 질곡을 당했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면 망각한 것이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이나 미국에 살고 있는 지금이나 그 나라의 국회방송을 틈틈이 시청한다. 의원들간의 치열한 토론은 있지만 투표후 결과에 대해서는 모두 승복한다. 우리나라처럼 회의실을 봉쇄한다거나 정당의 당론을 정해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없다.
한·미 FTA협상과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한국 국회에서의 비준이다. 그러나 또 한차례 볼썽 사나운 일이 생길 것 같다. 여야간 토론도 했고 대통령이 방문해서 미국과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 조항에 대해 재협상하겠다는 공언도 했다. 그러면 이제 선량인 의원들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찬성하는 의원과 반대하는 의원들 모두 자유의사에 의해 투표해야 한다. 그리고 역사에 그 책임을 지면 되는 일이다.
국회라는 기관은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언제까지 당론이라는 우산 또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당론을 정해 놓는 것이 아마도 우리나라에 공작정치가 있었던 3공 시절, 권력에 의한 이탈자를 막기 위해서는 그 당시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민주화수준은 세계적이다. 스마트폰 없이 살기 어려운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당론을 정해놓고 소속 국회의원들은 따라야 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지 의문이다. 당 지도부가 걱정하는 이탈표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표현하는 것이다.
작은 영토, 빈한한 자원, 분단된 조국, 주변 열강이 포진한 지정학적 위치 등을 생각할 때 우리끼리 단합해야 될 상황에서 왜 이렇게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가 너무 아쉽다. 그러나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당파싸움, 세도정치에 찌든 결과로 흘려야 했던 조상들의 피눈물을 생각해 본다면 길은 자명하다. 개방된 사회로 나가고 개방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단풍 든 숲속에 두갈래 길이 있었습니다./오랫동안 서서 한길이 굽어 꺾여 내려 간데까지 바라다 볼수 있는데 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길은 길에 이어져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수 있는지를 의심하면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 않은 길(Road not taken)'이다. 사람들에게 은연중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갈 것을 권유하는 시다. 식민지를 경험했고 동족간의 전쟁도 치른 우리는 늦게서야 경제발전으로 새로운 길을 열었다. FTA를 통해 새로운 땅(경제적 활동영역)을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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