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전 대전지방변호사회장 |
신과 경쟁하려는 인간의 모습이다. 지금의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이 신화는 오늘날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서 우회적으로 들려온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과학의 발전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연을 정복하고 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결국 자연을 파괴하면서 회복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으며 이제는 누구나 환경이 파괴되면서 인간이 살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인간의 오만과 탐욕이 인간의 무지와 함께 브레이크 없는 기차처럼 회복할 수 없도록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과연 그처럼 자연을 잘 아는 인간이 어떻게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을 파괴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정말 인간이 그처럼 자연을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과학이 그처럼 발달했음에도 인간은 바로 자기 자신조차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제 일을 전부 기억할 수 있는가? 우리의 눈에 비친 모든 사물을 한꺼번에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인간의 뇌에서 어떤 작용을 통해 이처럼 글 쓰는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식할 수 있는가? 아마도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러한 쓸데없는 일을 의식하거나 알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결국 인간이란 자기에게 필요한 것, 살기 위해 필요한 내용 외에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인간이 그에게 필요 없다고 하는 지식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상에는 인간에게 필요 없다고 여기지만 항상 존재하는 그러한 사물이나 일들이 훨씬 많으며 이들이 당신 주위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필요 없는 지식이 아닌 인간이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함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땅에 떨어져 있는 작은 돌 하나도 우리는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우리와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는 그러한 일들을 우리가 어떻게 의식하고 알 수 있겠는가?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인 편안함과 풍요로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로 다른 인간의 희생 위에서, 또는 자연의 회복할 수 없는 파괴의 대가인 사실을 알면서 그러한 편안함과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모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진실을 알았다면 인간으로서 그러한 편안함, 풍요로움을 거절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유권자라는 이유만으로 산을 부수고 들판을 생명체 없는 대지로 만들어 공장을 세우고 아파트를 짓는 자연의 계속적인 파괴가 어떠한 결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이 시대가 아니면 후손들에게 어떠한 재앙을 줄지 알면서 이러한 파괴를 계속하고 있는가?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도시의 권역을 넓히기 위해 무슨 무슨 지구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계속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인 지식이란 것도 고작 자기 편리한대로 파괴만 일삼는 빈곤한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환경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지만 자신이 가진 땅 옆에 큰 도로가 생기고 아파트를 짓는다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파괴도 과학으로 회복할 수 있다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과학 역시 아라크네처럼 오만한 인간, 탐욕스러운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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