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찬 대전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물론 다른 이유도 없지는 않았다. 이를 테면 대단히 번거로운 운동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한적하고 드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러나 골프를 위해서 기울여야 하는 수고로움은 해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적한 것처럼 골프는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일일이 멀리까지 나가야 하며, 그때마다 골프채를 챙겨서 다녀야 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나 또한 금과옥조로 삼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전하게 시대 및 사회 분위기가 바뀐 탓이지 그것 말고는 달리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나는 이미 소수자가 되어 있었다. 우르르 운동이 끝나는 시각에 맞춰 터덜거리며 혼자 나가 저녁 회식에 합류하는 일이 되풀이되자, 잘라 말하고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던 그 동안의 자세가 몹시 흔들렸다. 그래서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울리지 못하는 불편함보다는 뒤처지고 말았다는 열패감을 견디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뒤늦게 뭘 배운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일찍이 공자는 나면서부터 아는[生而知之] 것이 가장 위이고, 배워서 아는[學而知之] 것이 다음이고, 곤란해서 배우는[困而學之] 것이 그 다음이고, 곤란해도 배우지 않는[困而不學] 것이 가장 아래라고 했다. 그렇지만, 곤란을 겪는다 해도 막상 결심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친구들의 격려가 없었다면 나 또한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렵사회, 농경사회를 거친 인류는 이제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기반사회, 정보화사회를 향해 빠르게 진입하는가 싶더니 어느 새 성큼성큼 넘어가고 있다. 지식기반사회 및 정보화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기반으로 부를 창출하는 사회다. 이제는 그 자리를 지식과 정보로 대표되는 지력 및 두뇌노동이 차지하고 있다. 사라지는 직종이 있는가 하면 떠오르는 직종이 생겨나는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2025년에는 현재의 노동력 중 5%만이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린 바 있다. 산업혁명 초기에 기계파괴운동을 벌인 인류의 경험을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볼 수 있거니와 첨단 기기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는 예측은 미래학자의 연구에 기대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주유소의 주유원과 수퍼마켓의 캐시어가 필요 없고 통번역사, 비행기 조종사 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95%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인간 기대수명의 연장이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빠르게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2년에 돌파하리라고 하던 기대수명 80세의 벽이 2008년에 깨졌다. 머지않아 기대수명 100세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대수명의 가파른 성장에 반비례해 직장수명은 점점 짧아지게 된다. 당연히 평생직장이나 평생직업의 개념은 사라지고 수치대로라면 평생 두 번의 전직까지 가능한 현실이 되고 있다. 그와 같은 가능성이 불가피성이 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평생학습 혹은 평생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골프를 배우는 일은 선택사항이 될 수 있지만 직종이 사라지는 데 따른 전문성의 증발과 전직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 사이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뚝 떨어진 노후를 감당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다. 평생학습 혹은 평생교육이야말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자의 시대에는 곤란해서 배우든, 곤란해도 배우지 않든 그것이 개인의 몫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문제를 개인의 몫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시대가 되었다. 국가가 나서고 지방정부가 나서고 각종 사회단체가 나서야 한다. 친구가 등 떠밀며 배우라고 한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국민들로 하여금 평생교육의 길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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