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수 대전충남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두리한의원장 |
돌아가신 리영희 선생이 갈파한 대로 일제의 식민지 강점은 우리 민족에 대한 부정이었다. 따라서 부정을 부정하는 과정, 식민지 잔재를 깨끗이 몰아내는 것이야 말로 신생국인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가적 과제였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반민족행위처벌특별위원회는 이승만과 하수인들에 의해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일제에 부역하고 민족을 배반한 자들이 그대로 이 사회의 기득권층을 형성하면서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왜곡된 계층계급구조를 갖게 되었다.
상당한 문필가에서 친일세력 나팔수로 전락한 복거일의 주장대로 일제 강점기는 정치적인 관심만 접는다면 그런대로 살만한 시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에게 정치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예수의 말씀을 빌지 않더라도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가정이다. 정치란 사람이 끝까지 안고 가야 할 희망이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 사회를 유지시키는 최고로 고급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일제통치를 미화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기득권층은 부단히 일제를 미화하고 있다. 우리 지역에 있는 국립현충원에 김구 선생의 모친과 그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린 김창룡이 함께 묻혀 있는 비극이 이런 현실을 웅변한다. 63년 전 나라를 세울 때 왜곡된 출발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그 결과로 우리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경제성장이 이룬 나라라는 자랑과 함께 가장 빠르게 비정규직을 만든 나라로도 꼽힌다. 불과 십수년 만에 자그마치 870만 명의 비정규직이 우리 옆에 서 있다. 취업자 둘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다. 청년실업률이 20%를 넘는다는 것도 서글픈 일이다. 경제를 잘 할 것이란 믿음으로 현 정권을 택한 결과가 이러하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다. 정치의 요체란 모름지기 백성의 불만이 민중 봉기로 치닫지 않도록 다독이는데 있다. 측근비리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역대 이렇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은 없었다고 자화자찬하는 귀머거리 정권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고 느낀 유권자들이 서울시장을 갈아치움으로써 현 정권에게 경고를 보냈는데도 회전문 인사는 그칠 줄 모른다. 민심 이반을 모르는가? 정권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인가?
내곡동 사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전직 대통령 사저를 잘 짓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러나 나랏돈으로 사저 터를 사들이고 자식에게 편법으로 증여하려 했다는 정황이 분명한데도 자성도 없고 문책도 없다. 영명한 군주 영조대왕은 쓰던 보료가 헤어져 호조에서 새로 비단 보료를 해 올리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를 써보니 편하고 좋다. 하지만 이 호사스러움에 눈이 가려져 백성의 고달픔을 헤아리지 못할까 걱정이 되니 물리도록 하라. 헤진 보료를 다시 사용하고 새 보료는 그 뒤로 100년이 넘게 호조 곳간에 모셔졌다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통령 기수가 같은 미국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 암살 뒤에 미국 17대 대통령이 된다. 그리고 전임자의 노예해방을 부정하는 정책을 펴다 탄핵을 받기에 이른다. 한 표 차이로 겨우 파면을 면하지만 다음번 선거에서 공화당 지명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정계에서 은퇴한다. 그의 최대 업적은 러시아의 알래스카를 사들인 것이라 하니 사업가로서 안목은 있었던 모양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치세가 모두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 땅의 기득권 세력이 김어준 말마따나 대한민국을 수익모델 삼아서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음에 분개한다면 정권교체는 하나의 당위가 된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겪어봤다. 서울시청 광장에 인공기가 휘날리지도 않고 세상이 뒤집어지지도 않았다. 신임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바꾸면 변한다. 당선된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서울 공기가 다르다는 댓글도 보았다. 과장이겠지만 그 마음이 헤아려지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바꾸면 변한다. 우리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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