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한 백화점 VIP를 자칭하는 오모(45·여)씨는 최근 동창회 모임에서 얼마 전 구입한 프라다 가방과 흡사한 핸드백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본 오씨는 친구가 일명 '짝퉁 백'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알고 슬그머니 내려놨다. 이런 사실도 모른 채 정작 '짝퉁 백'을 가져온 동창은 자신의 백을 명품백으로 알아보는 친구가 있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최근 들어 유통업계가 명품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것과 발맞춰 짝퉁시장도 급부상하고 있다. 많은 수의 여성들이 명품을 구매하지만 실상 자세히 살펴보면 짝퉁 상품을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많다.
한 손에 들어올 만한 가방이 수십만 원에 달하는가 하면 비교적 상품 크기가 크면 수백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아 있는 명품을 10만원 안팎의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유혹에 짝퉁 상품들이 날개돋친 듯 판매되고 있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한 짝퉁 상품 유통업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대전지방경찰청은 지난달 30일 대전지역 유명상가에서 해외 유명 브랜드가 부착된 '짝퉁' 가방 등을 판매한 김모(56)씨 등 12명을 상표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역 상인들인 김씨 등은 지난 9월 21일부터 10월 22일까지 대전 시내 일원 상가에서 루이뷔통, 샤넬, 구찌 등 해외 유명브랜드 10개사의 상표가 부착된 '짝퉁' 가방, 지갑 등을 진열, 판매한 혐의다. 게다가 경찰은 이들로부터 450여 점 5억원 상당의 '짝퉁' 상품을 압수했다.
이에 못지않게 짝퉁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지난 4월 암시장 전문조사 사이트인 '하보스코프 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짝퉁시장 규모는 6300억 달러로 추산됐다. 이 가운데 국내 짝퉁시장 규모는 연간 140억 달러(16조원 가량)에 달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10위에 올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소셜쇼핑업체인 코코펀이 홈페이지를 방문한 2030세대 여성 총 688명을 대상으로 '이미테이션(일명 짝퉁)'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62명(52.6%)이 이미테이션 제품을 2개 이상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4개 이상은 13.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짝퉁 시장은 단순히 명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야간시간대에 문을 여는 대전지역 한 클럽주점 호객꾼은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명함을 제작해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주민등록증이라는 제목 대신 일명 '물 등록증'이라는 글자를 삽입해 자신을 알리고 있는 것. 주민등록증을 도용하거나 위조한 것은 아니지만, 변형시켜 짝퉁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시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효과적이라는 게 한 호객꾼의 귀띔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짝퉁에 열광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확산에 대한 위험성이 지적되고 있다. 보이는 것에만 현혹돼 보이지 않는 부분은 무시해버리는 사회적 풍조가 짝퉁 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얘기다.
몇 해 전 학력위조 사건들이 줄줄이 터져 나오면서 국내 예술계 및 학계를 뒤흔들어놓은 상황 역시 짝퉁 선호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불리는 '스펙(학력, 자격증 등 자신의 능력을 알리는 요소)'이 취업시장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바람에 이를 부풀리거나 위조하는 등 사건도 이어진다.
반면, 최근에는 창의성, 순발력, 문제 해결능력 등 다양한 요소를 판단조건에 포함하고 있지만, 아직도 기본적인 스펙 여부에 따라 색안경을 쓰고 있기는 마찬가지.
능력이나 상품의 질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부분, 갖춘 배경 등이 후광효과를 빚어내는 것이다. 사회경력 3년차인 한희정(28·여)씨는 “대학 때는 스펙을 채우기 바빴고 면접을 보고자 쌍꺼풀 수술까지 했고 이제는 친구들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으려 짝퉁 명품가방을 산다”며 “그러나 진정한 나를 세상에 보이기보다는 겉으로 치장해 놓은 것들로 판단되는 사회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인지 가슴이 철렁할 때가 많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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