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환]멋진 신세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나경환]멋진 신세계

[사이언스 칼럼]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승인 2011-11-14 14:23
  • 신문게재 2011-11-15 21면
  •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 나경환 한국생산기술연구원장
기술과 예술을 가르는 경계는 무엇일까. 쉽게 들리지만 선뜻 답을 내리기는 어려운 질문이다. 실제로 르네상스시대만 하더라도 예술과 기술의 경계는 모호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아예 그 뿌리가 같다. 그리스 신화의 대장장이 신(神) 헤파이스토스. 탁월한 세공솜씨로 거의 모든 신들의 저택을 지었던 건축기술자의 시조인데, 그가 신전을 축조하며 발휘한 기술들은 곧 예술로 간주됐다고 전해진다.

사실 예술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건 현대에 이르러서다. 기술은 '쓸모'를 따르고 예술은 '쓸모'를 버린다는 말도 있지만, 자투리 천을 이어 붙인 전통조각보도 충분히 예술적일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최근 문화계에서 일고 있는 지각변동은 예술과 기술이 서로를 적극 포용할 때 더욱 풍성한 성과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 연극, 뮤지컬 등의 공연무대가 대표적인 예다. 지금까지 1억명이 관람했다는 '태양의 서커스'의 경우 올해 매출액만 10억 달러가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불을 뿜고 죽마를 타던 곡예사 기 라리베르테(Guy Laliberte·52)가 거의 절멸상태에 놓였던 서커스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며 세계 공연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된 데에도 기술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서커스에 스토리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춤, 체조, 음악, 의상, 조명 등 다양한 요소들을 녹여 고급스러운 종합예술로 재탄생시켰다. 동물이나 스타곡예사 없이도 충분히 스펙터클한 서커스 무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도 메카트로닉스에 기반한 표현기술 덕분이었다.

예전에는 무대를 만들 때 목수가 합판으로 일정한 형태를 짜고, 거기에 색이나 천을 입혀 완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공연의 내용도 감독의 직관이나 배우들의 컨디션에 좌우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센서, 액추에이터, 제어, 통신기술 등을 활용한 최첨단 표현기술로 무대는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등장인물들의 감정은 한층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배우의 표정과 음악, 무대장치와 조명 등이 100분의 1초 간격으로 합을 맞춰 관객들의 오감을 극대화시키는 표현기술. 이 표현기술이 구현된 스마트 무대장치가 공연예술의 규모와 성격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CMT개발단에서도 첨단 융복합기술을 적용한 문화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CMT(Culture Mechatronics)란 CT분야 중에서도 하드웨어 기반기술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Culture'와 'Mechatronics'의 신조어다.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을 통합한 학문 분야인 메카트로닉스가 그 이름에서부터 융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듯, 기계·제어·전자기술 등을 융복합해 하드웨어 기반의 문화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중천', '적벽대전', '최강칠우' 등의 영화 속 촬영무대에 CMT가 쓰였고, 내년 1월 제주도에서 열리는 인기 아이돌 그룹의 무대와 '2012 여수엑스포' 무대에도 CMT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이 무대장치에는 3D 와이어 플라잉 시스템도 선보인다. 일일이 사람 손으로 잡아당겨 움직이던 와이어 신을 이동자의 키와 몸무게, 이동 궤적 등을 미리 시뮬레이션한 후 현장공연에서는 타임시퀀스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이고 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사람이 조작할 때보다 시행착오가 적고, 무엇보다 무대사고를 방지할 수 있어 안전성에 대한 신뢰도 높다.

CMT개발단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개발 성과는 전자마루. 자기인식 장치를 내장한 전자블록을 레고 식으로 결합해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어 편리하다. 또, 한 번 쓰고 버리거나 해체 후 재 구축해야 했던 기존 목고 식 무대와 달리 얼마든지 재 사용 가능해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문화와 메카트로닉스라는 상호 모순돼 보이던 요소들을 과감히 융복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생기원 CMT개발단에서는 전자마루의 디자인컨셉트를 확립해 시제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세계 최초로 상품특허를 받아 현재 실용화를 진행중이다.

이제 'Inter'나 'Multi'로는 부족해졌다. 단순 조합을 넘어, 서로 넘나들고 소통하며 완전히 혁신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시대가 됐다. 그 공간은 문화와 기술이 융합되어 다양한 콘텐츠를 창출함으로써 새로운 시장과 삶을 펼칠 수 있는 신세계가 될 것이다. 경계는 무의미해지고, 융복합으로 더 넓어질 멋진 신세계! CMT가 앞당기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