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서산 천수만에서 둥지를 찾아 돌아가는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본능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또한 바위섬 간월도에서 달을 보면서 지친 심신을 달랜다.
▲천수만 철새=사람도 철새도 노을빛 그리움에 물들다. 종류도 모양도 가지각색인 그 많은 새들이 어쩌면 그리도 일사불란하게 자기가 가야할 곳을 찾아 날아드는지…. 대자연의 경이로움 앞에 그 하나인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고 작음을 느낀다.
바다와 호수, 평야가 어우러진 서산 천수만에는 지난 1984년 충남 서산과 홍성 사이 8㎞구간을 '유조선공법'으로 둑을 막으면서 거대한 방조제가 생겨났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서산 천수만A·B지구 간척지는 A지구인 동쪽의 간월호지역과 B지구인 서쪽의 부남호지역으로 나뉜다. 비행기로 볍씨와 비료, 농약을 뿌릴 정도로 광활한 논과 호수, 갈대숲이 생겨났다.
그때부터 서산 천수만은 우리나라 최대의 겨울철새 도래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서산사람들 인심만큼이나 넓은 천수만 간척지의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면 논에는 많은 알곡들이 남는다.
유기물이 풍부하고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호수에는 많은 수생 동·식물과 이들을 먹이로 하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살게 됐고 자연스레 물고기와 나락을 노리는 겨울철새들 역시 이곳으로 날아들게 된 것이다.
1억5000여㎡의 넓은 천수만 들판에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철새들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해 이듬해 봄소식과 함께 북쪽으로 이동한다.
대부분 시베리아에서 중국을 거쳐오는 새들로 가창오리, 청둥오리, 기러기 등 그 수만 130여종에 이른다. 그 중 가창오리는 전 세계 30만 마리 가운데 20만 마리가 천수만에서 겨울을 난다. 이 외에도 큰고니, 노랑부리저어새, 흑두루미, 개리 등 천연기념물도 20여종이나 이곳에서 월동을 한다.
▲ 어리굴젓의 본고장 간월도=물이 들어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바위섬 간월도. 간월도는 '달빛을 본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빛을 보고 득도했다하여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어머니 등에 업혀 이 섬으로 들어오게 된 어린 무학대사는 이곳 토굴에서 달빛으로 공부를 하다가 천수만에 내리는 달빛을 보고 불현듯 깨우침을 얻게 된다. 그 후 그 절은 간월암(看月庵)이 됐고 섬이름도 간월도가 됐다는 것이다.
매년 정월 보름에는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군왕제가 열린다. 조선 태종 때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어리굴젓'이 유명하다. 김이 모락모락 막 지은 하얀 쌀밥에 어리굴젓을 얹고 김에 싸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어리굴젓'은 알싸하고 고운 고춧가루로 양념을 해 만든 매운 굴젓이라는 뜻으로 '맵다'는 뜻의 지역방언 '어리어리하다'에서 나온 이름이라 한다. 어리굴젓과 함께 간월도의 명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영양굴밥이다. 천수만 간척지에서 수확한 찰진 쌀밥에 밤, 호두, 대추 등을 넣고 알이 통통하게 오른 굴을 듬뿍 넣어서 지은 영양굴밥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최고의 별미이다.
달래를 송송 썰어 넣고 참기름을 살짝 떨어뜨린 달래간장으로 영양굴밥을 쓱쓱 비벼서 먹으면 입안에 바다냄새가 한가득 퍼진다.
서산=임붕순 기자 ibs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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