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전 CBS상무, 중문노인복지센터장 |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광역자치단체장 한명을 뽑는 선거였지만 내년에 있을 총선 대선의 전초전 성격으로 확대되었고, 20~40대의 젊은 세대는 그 투표를 통하여 방치되었던 분노를 분출하였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로 미국에서 시작된 시위가 각국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 젊은 세대는 거리로 나서지 않았고 조용히 투표로 속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왜 그들은 분노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심각한 양극화 현상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서 실업의 고통을 몸으로 겪고 있고, 거기에 더해 물가상승, 전세난 등으로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힘든데, 일부 소수의 엄청난 부자들은 부의 세습이 구조화되면서 계층이동의 문이 닫힌 희망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표출된 것이다.
이들은 자기 세대를 이구백(이십대 구십%는 백수),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메뚜기 인턴(인턴만 옮겨 다니는 세대), 취집(취직 대신 시집), 삼초땡(30대초 퇴직) 같은 자조적 신조어로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갖고 있는 분노가 제도적으로 표출될 수 없고, 해소할 방법이 없이 방치되어 온 것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역구 국회의원이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 준다는 응답이 5.5%에 불과했고, 자신의 의견을 대변해줄 사람이 없다는 의견이 82%에 달했다.
뒤늦게 청와대와 각 부처가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정책투어'에 나선다고 법석이지만 지금까지의 해오던 관습 그대로 반복하는 것 같아 큰 기대를 가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여당 내 쇄신파 의원들이 민초들의 분노를 대변하겠다고 청와대를 향하여 포문을 열었다. 이들은 대통령이 측근 비리가 터진 상황에서도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언급한 점 등 몇 가지 사례를 거론하며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당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때마다 나타나는 철새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는 여·야·정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 자기에게 충성하는 사람만 선택하고,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뒤로는 불공정한 일들이 비일비재한 현실에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청와대가 먼저 변해야 한다. 여당은 당명을 바꾸거나 중앙 당사를 없애는 수준으로 민심이 되돌아올 것으로 판단한다면 정말 엉뚱한 곳을 긁고 있는 것이다. 또 야당도 마찬가지다. 민생해결을 외면한 채 야권 통합에만 열중한다면 분노하는 민심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국민들의 분노는 내년 선거에서 다시 표출될 것이다. 창조적 파괴 수준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방치된 분노는 치유되어야 한다. 치유를 위해 당장 뾰족한 대책이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신뢰의 회복이 급선무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 방치된 분노를 치유하기 위하여 지혜를 모으고 함께 노력해야할 시점이다. 민초들의 분노를 헤아리고 해결하려는 따뜻한 정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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