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넘은 상술 vs 재미·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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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마다 마케팅 치열, '과소비 조장' 비난도 11일 빼빼로데이에 묻혀 '농업인의 날'은 관심밖

  • 승인 2011-11-08 17:11
  • 신문게재 2011-11-09 5면
  • 이경태 기자이경태 기자
[이경태 기자의 세상 돋보기 - 연중 'OO데이'… 엇갈린 시선]

1월 14일은 다이어리를 주며 사랑을 계획하는 날(다이어리 데이), 2월 14일은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밸런타인 데이), 3월 14일은 여성에게 사탕을 주는 날(화이트데이), 4월 14일은 연인이 없는 사람들끼리 자장면을 먹으며 위로하는 날(블랙 데이), 5월 14일은 연인에게 장미를 선물하는 날(로즈 데이), 6월 14일은 연인과 키스하는 날(키스 데이), 7월 14일은 은반지를 선물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날(실버 데이), 8월 14일은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는 날(뮤직 데이), 9월 14일은 기념사진을 찍는 날(포토 데이), 10월 14일은 분위기 좋은 곳에서 연인과 와인을 마시는 날(와인 데이), 11월 14일은 야한 영화를 연인과 함께 보는 날(무비 데이), 12월 14일은 남성이 여성에게 돈을 쓰는 날(머니 데이)….

▲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로 알려진 오는 11일을 앞두고 학생들이 빼빼로를 고르고 있지만 갈수록 상술로 치닫는 기념일 마케팅에 대한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이민희 기자
▲ 밀레니엄 빼빼로데이로 알려진 오는 11일을 앞두고 학생들이 빼빼로를 고르고 있지만 갈수록 상술로 치닫는 기념일 마케팅에 대한 지적도 끊이질 않고 있다.이민희 기자

한국 사회가 기념일을 챙기기 위한 사람들로 연중 들썩거리고 있다. 오는 11일 100년 만에 맞는다는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를 앞둔 가운데 공휴일을 제외하고 임의로 정한 기념일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생일과 각종 개인 기념일까지 겹치면 한 달에 2~3번은 기념일을 맞아야 한다는 말이 헛말은 아니다.

취업준비생 홍지현(28·유성구 궁동)씨의 경우, 11일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한숨만 내쉴 뿐이다. 사실 홍씨는 월세 30만 원으로 근근이 버티는 원룸 족이지만 여자친구의 성화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생활비 일부를 떼어내 선물을 사줘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해 집에서 용돈을 받아오기도 어려운 홍씨에게는 연말에 일부 쏟아지는 취업자리 걱정보다는 연말 기념일을 어떻게 넘길 수 있을 지가 더 신경이 쓰인다는 것. 기념일을 맞는 이들은 이처럼 기념일 챙기기가 어렵지만 실제 유통가에서는 기념일 특수를 마케팅에 이용해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을 자아낸다.

삼성증권 한 연구원은 “지난해 롯데제과가 빼빼로로 780억원 규모의 매출을 올렸다”며 “올 들어 밀레니엄 빼빼로 데이의 영향으로 20% 정도 매출상승이 예상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업체 역시 지난해 매출보다 70억원 정도의 매출신장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 신장에 기념일이 빠질 수 없는 요소로 두드러지다 보니 유통업체로서는 기념일 마케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전의 한 편의점은 젊은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대형 빼빼로는 물론, 희귀한 빼빼로를 구하는 데 혈안이기도 하다.

사회 분위기상 빼빼로를 사겠다는 시민이지만 이처럼 기업적인 이윤을 높이는 방향으로 치우친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서민들의 눈에는 이 같은 기념일이 '과소비의 날'로 비쳐지고 있다.

송지완(44·회사원)씨는 “집에 들어갈 때 부인을 위해 빼빼로를 구입해 들어가겠지만 꼭 사가야만 되는 현실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천편일률적으로 인식되는 기념일을 꼭 챙기기보다는 가족 기념일부터 잊지 말고 가족구성원들에게 관심을 표하는 게 오히려 바람직한 사회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고 지적했다.

한편으론 제품판매를 위한 기업의 마케팅에서 비롯된 기념일이 아닌, 의미 있는 기념일을 만들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11일 '농업인의 날'을 기념해 '가래떡 데이'가 최근들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상황이다. 2003년 안철수연구소에서 가래떡 데이를 정해 현재까지 정례행사로 키워올 뿐만 아니라 이같은 행사가 정부와 민간단체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빼빼로 데이에 가려졌던 농업인의 날이 가래떡을 통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농식품부 역시 11일까지를 가래떡데이 행사주간으로 정하는 등 새로운 트렌드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기도 하다.

이보희 식생활교육국민네트워크 조직위원장은 “가래떡은 농업인의 날을 기념하고 쌀소비를 늘릴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건강하고 오래살자는 의미가 있다”며 “빼빼로가 가족과 연인끼리의 나눔이라면 가래떡은 한국민 전통의 나눔문화에서 비롯해 소외된 이웃에게까지 보듬는 상징적 기념일”이라고 강조했다.

이경태 기자 biggerthan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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