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무현 한국기계연구원 선임연구원 |
영화나 TV에서 쓰이는 3D 기술은 관객의 몰입감을 극대화한다. 인간의 두 눈에서 받아들이는 화상의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 사물의 깊이감을 만들어 낸 까닭이다.
또한, 최근 가정에서 게임이나 운동을 할 수 있는 '위'(Wii)나 '키넥트'(Kinect) 게임 역시 사용자의 동작을 컴퓨터가 인식해 가상의 역동적 공간을 즐길 수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몰입감과 상호작용 측면에서 가상현실의 핵심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가상현실 기술은 실제보다 물리적 에너지와 경비를 절감할 수 있어 녹색기술로서도 주목 받고 있으며 영화나 게임 외에도 의료와 국방,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 제품개발과 생산, 운영을 포함한 기계산업 분야에서도 유용하게 응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차량이나 선박, 플랜트 등 실물 제품이나 환경을 미리 만들어 보기가 어려운 경우, 디지털 모형을 이용한 실감형 가시화 기술을 사용한다. 시스템의 초기 설계 단계에서 최종 사용자 입장을 반영할 수 있어 중요한 의사결정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추후 상세 설계 단계에서는 제품의 물리적인 성능을 미리 예측하고 평가하기 위해 컴퓨터 이용설계(CAD)와 전산수치해석이 주로 이용된다.
특히 유체 시뮬레이션과 같이 대용량 3차원 데이터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몰입형 가상현실 기술이 쓰인다. 제조와 생산 단계에서는 생산 설비의 배치와 운영, 작업자의 능률과 안전도 향상을 위한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기계 시스템의 운영과 유지보수 단계에서도 비슷한 응용이 가능하다. 상태감시 분야에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적용해 작업자의 정확한 의사결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기계설비의 조작이나 사고 발생 시 인적 피해를 줄일 수 있는 훈련용 시뮬레이터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 밖에 로봇을 이용한 원격 조정시스템에서도 원격지의 환경을 실감 있게 재현하고 조작하는 데에 쓰일 수 있다.
한국기계연구원은 여러 종류의 엔지니어링 기반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를 개발해 기계기술 분야에 응용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기반 시뮬레이터란 전문적인 수치 시뮬레이션 도구를 이용해 물리 현상을 정밀하게 예측함으로써 현실과 가장 근접한 가상환경 속에서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한국기계연구원이 개발한 도시형 자기부상열차 시뮬레이터는 인천국제공항과 대전시 일부 구간에 대한 열차 운행을 공학 데이터를 활용해 가상으로 재현한다. 실감 나는 탑승 체험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노선과 분기기 등 시설물의 위치 결정, 차량 디자인과 색상 선정, 유사시 비상 대피 시나리오 검증 등 상용화를 앞두고 있는 신 교통시스템에 대한 다양한 사전 설계 검토도 수행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상 플랜트, 저장시설, 공항, 유원지 등으로 활용하기 위한 초대형 부유식 해상 구조물에 대해 해양파에 의한 구조물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상현실 환경도 구현할 수 있다. 또 화재 훈련 시뮬레이터는 화염과 연기전파 상황을 정밀하게 예측해 화재 상황을 가상현실로 구현, 실제 소방관들의 대피와 소화, 구조활동 훈련 등에 사용된다.
최근에는 플랜트 등 기계설비에서 폭발과 같은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안전대응 시뮬레이터를 개발 중이다. 또한 가상현실을 적용한 시뮬레이터 개발과 함께 이를 직접 구현하는 휴먼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연구도 중요하다. 공간 탐색을 위해서는 주로 조이스틱 등과 같은 도구를 이용하는데, 이를 대체하는 보행 인터페이스를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인간의 걸음 동작만으로도 구현이 가능하다. 보행 이동 속도가 중요한 탐색 작업 또는 시설물의 크기나 복잡도를 이해하면서 특정 과업을 수행해야 할 경우 필수적인 기술이다.
가상현실 기술은 이처럼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만큼 녹색성장과 고부가가치 산업을 견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여러 가지 학문과 산업 분야가 융합돼 날로 발전한다면 인간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 세계에 빠뜨린다는 가상현실 기술의 궁극의 목적이 더욱 빨리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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