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동구 중동에는 벌써 65년이나 같은 간판 아래서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유서 깊은 양복점이 있다. ‘터 기(基)’, ‘믿을 신(信)’, 믿을만 한 곳이라는 이름의 ‘기신양복점’. 50대 이상 중년의 신사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용해봤거나 이름을 들어봤을 곳이다.
세월마저도 멈칫대고 있는 듯한 ‘기신양복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곳이 과연 6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곳인가 싶을 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비켜간 듯 깔끔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 아버지 대를 이어 ‘기신양복점’의 65년 역사를 함께 해 온 김근배 대표. 맞춤 양복의 전성기를 지나 기성복의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맞춤 양복을 찾는 고객들이 있어 기쁘다는 김 대표의 30여년은 우리나라 패션사의 굴곡과도 닮아있다. |
‘기신양복점’ 김근배(67)대표의 말이다. 김 대표는 물론이고 재단사 원성현(71)씨, 실무담당 홍석만(68)씨까지 ‘기신양복점’과 30여년간 동고동락해 왔다.
1947년 재단사로 일하던 김 대표의 아버지가 부여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대전에 올라와 양복점 문을 연 후 30여년을 운영했고, 1978년 양복점을 물려받은 김 대표가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이제 김 대표도 아버지가 그랬던 것 만큼의 긴 세월을 양복점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초 맞춤양복이 가장 번성했던 때를 떠올리던 김 대표는 당시엔 지금처럼 ‘기성양복’이 없던 시절이라 도시의 멋쟁이 신사들은 모두 맞춤양복을 입었다고 회상한다. 수십 명의 직원을 둘 정도로 주문이 쇄도했고 서울 명동에 분점을 두기도 했다고.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양복을 맞춰입는 오랜 단골이 자랑이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기성복이 일반화되면서 양복점을 찾는 이들이 많이 줄었지만 고객의 입맛에 최대한 맞춘 ‘기신양복점’만의 맞춤 양복 노하우와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감각적인 솜씨로 새로운 단골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치수를 재고, 재단을 하고, 가봉을 하고 그렇게 양복 한 벌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주일에서 열흘이 걸리는데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 ‘기신양복점’의 양복은 한 땀 한 땀 사람 손을 거친 그야말로 작품이라고 할 만 하다.
“진짜 멋쟁이, 옷을 입을 줄 아는 분들이 맞춤 양복점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더욱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지요”라고 말하는 원성현 재단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김 대표는 앞으로도 ‘기신’의 이름을 버리지 않고 계속 지켜나가겠다고 말한다.
“맞춤 양복점이니까 변하는 세상에도 잘 맞춰야지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변화에 발맞추면서 제가 지킬 수 있는 데까지 지킬 겁니다.” 힘주어 말하는 김 대표의 결연한 표정 속에 앞으로의 ‘기신양복점’의 미래가 담겨 있는 듯 하다. 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기신양복점’ 김근배 대표는?
부여에서 재단사로 일하고 있던 아버지 김현갑씨가 1947년 대전 중동에 자리 잡고 문을 연 ‘기신양복점’을 1978년 물려받아 30여 년째 운영하고 있다. 김 대표가 양복점을 물려받기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재단사 원성현, 실무담당 홍석만씨와는 가족처럼,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김대표는 두 동반자와 함께 시대 변화에 맞는 맞춤양복 제작에 힘쓰고 있으며 대전 최초이자, 최고(古)의 맞춤 양복점인 ‘기신양복점’의 명맥과 전통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중동 골목을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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