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연희 인터넷방송국 취재팀장 |
전임 강병호 원장의 임기가 지난달 25일이었는데 31일 이씨가 선임되기까지 공모절차도, 누가 온다더라는 하마평도 없었다. 이사회가 선택할 수 있게 원장 후보를 복수추천하지도 않았다. 김광희 시티즌사장은 물론 박상언 문화재단 대표, 정진철 복지재단 대표 등 대전시 산하기관장 인선 때마다 무늬만 공모, 회전문 인사, 지연(地緣)인사 등 잡음이 끊이지 않더니 이번엔 아예 비밀리에 단독후보로 이사회를 통과시켜 공론화 자체를 막으려 한 것 같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검증요구에 “이럴 바에야 차라리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는 게 낫다”던 염 시장이 인사논란을 빚은 지 한 달 만에 이런 실망스런 인사를 또 할 줄은 몰랐다. 시티즌, 복지재단, 문화재단, 평생교육진흥원, 마케팅공사, 문화산업진흥원 등 웬만한 산하 기관장이 임명 교체된 마당에 이제와 공모하겠다는 것도, 인사청문회를 수용하겠다는 것도 우습다.
그러나 대전시의회가 청문회제도 도입에 나서는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염 시장 임기 중 남은 산하 기관장 인사는 몇 건 안 되겠지만 다음 시장을 위해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출자·출연한 기관의 사장과 임원에 대한 전문성과 적격성을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고액 연봉과 관사까지 제공하며 유명 배우를 모셔왔으니 성과를 내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아야 한다.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과 대중예술단체 총연합회장을 맡아 영화·드라마계의 인적 네트워크가 뛰어나다는 이씨는 제작사를 운영한 경험도 있다. 시 관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부터 실무를 맡은 사무관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능한 인재'라고 칭찬한다. 이런 이 씨는 대전문화산업진흥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시는 우선 그가 문화부 인맥을 활용해 HD드라마타운 조성 예산 63억 원 가운데 삭감된 34억 원을 되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화·드라마 제작사를 불러 들여 대전이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촬영장으로 들썩이면 좋겠다. 서울의 제작사들이 '떴다방'처럼 며칠, 혹은 몇 주 촬영만 하고 뜨는 게 아니라 영상의 특수효과와 시뮬레이션 등 후반부 작업은 당연히 지역업체들과 함께 해야 한다.
영상산업이 활성화되면 지역 영상제작자들은 더 이상 결혼식 비디오 촬영기사로 나서지 않아도 된다. 지역의 한 영상업체는 진흥원에서 2000만원을 지원받아 1년간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방송사 다큐멘터리 제작비가 억대를 능가하는데 비하면 인건비도 못 미치는 적은 액수다. 이런 저예산 다큐가 대전의 문화콘텐츠가 되기까진 너무나 힘들다.
진흥원이 지역영상업체에 지원하는 예산은 연간 1억 원 정도인데 이마저도 150여 업체 가운데 몇 군데만 선정된다. 영상제작자들은 신임 원장이 수도권과 대전의 영상산업을 연계해 지역 업체들의 안정적 수익기반을 마련하고 대전만의 문화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을 바라고 있다.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다는 이씨에게 대학생들도 기대가 크다. 한해 대전에서 배출되는 영상제작인력은 7000명이다. 대전에 있는 150개 영상업체에서 매년 1명씩만 채용해도 150명은 취업이 되겠지만 실상은 한 명도 뽑지 못한다.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가야 한다. 이씨가 대전에 돈을 벌어다주고 일자리까지 만든다면 금상첨화다.
그런데 이씨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말이 원장이지 예산 편성도, 직원 인사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알까? 연 20억 안팎의 예산을 시에서 편성해주고 관리감독까지 한다는 것은 들었을까? 진흥원 예산의 대부분이 직원 인건비며 지역영상업체를 지원할 돈도, 문화콘텐츠를 제작할 돈도 없다는 것은 생각해봤을까?
시가 이씨를 영입하며 사례로 든 배우 조재현·박상원씨는 경기영상위원회와 경남영상위원회 위원장이다. 이에 비하면 이효정 씨는 대전의 문화산업을 부흥하고 문화콘텐츠를 생산하는 막중한 자리다. 시는 이씨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와 산하기관 간 옥상옥(屋上屋)구조를 개선해야 하며 이씨 또한 인맥으로 영화·드라마 몇 편 유치하는 '얼굴마담'으로 전락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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