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 도착해 맨 처음 일정으로 찾아간 곳이 유럽의 최서단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였다. 6월 8일 오전 8시 55분 첫날 묵었던 호텔입구에서 버스로 30분도 채 안된 오전 9시 20분께 대항해시대 때 유럽인들이 바다의 끝이라고 믿었던 카보 다 로카에 도착했다.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리면서 멀미가 나기도 했으나 바닷가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 도착해 바닷바람을 맞으니 이내 속이 가라앉았다.
▲ 카보 다 로카임을 알리는 돌로 쌓은 탑 형태의 조형물. |
세찬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언덕에 서서 대항해시대 이곳을 출발했던 선원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잠시 상념에 젖어보았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미래 앞에서 선원들 역시 번민과 일확천금의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끝 모를 바다를 향해 떠났던 그들에 의해 포르투갈은 해로를 개척해 전성기에는 자국의 100배가 넘는 식민지를 창출했다. 역사는 역시 도전하는 이들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곳 카보 다 로카에 세워져 있는 기념탑에서 사진을 찍고 등대모양의 사무실에 들어갔는데 유럽 대륙의 끝에 왔다는 증명서를 팔고 있었다.
▲ 신트라의 골목길은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 |
놀랍게도 너무도 멋진 풍경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신트라는 리스본에서 가까운 대표적 관광지로 꼽힌다. 신트라에는 14세기에 지은 왕가의 여름별궁을 비롯해 귀족들의 별장이 있으며 옛 정취가 그대로 남아있어 과거의 포르투갈에 온 기분을 느끼게 된다.
또 신트라의 언덕 위에는 성터가 보이는데 7~8세기 무어인들이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면 신트라 뿐 아니라 멀리 대서양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끝까지 오르지는 못했다. 대신 신트라에 있는 왕궁에서 언덕길 쪽으로 골목길이 여기저기 나 있는데 그 좁은 골목을 일행들과 함께 걸었다.
▲ 카보 다 로카를 관리하는 관리소 건물. |
사실 포르투갈은 우리에게 생소한 유럽국가에 속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럽 국가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으로 필자의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도 불어와 독일어가 전부였다. 그런 연유로 포르투갈은 생소한 국가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도 포르투갈은 맛보기로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스페인이 주목적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르투갈은 어딘지 모르게 매력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 포르투갈 14세기 왕가의 여름별장이 있는 신트라의 모습. |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인물에는 대항해시대를 연 바스코 다 가마와 독재자로 이름을 날린 살라자르도 있지만, 포르투갈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알린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있다. 필자는 20대 때 그녀의 노래 '검은 돛배' (Barco Negro)를 레코드로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노래는 바다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어느 날 검은 돛을 달고 돌아오는 남편의 배를 맞게 된다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애조를 띠고 있어 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던 곡으로 기억된다.
1999년 그녀가 타계했을 때 국장으로 치러질 만큼 그녀에 대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애정은 대단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카보 다 로카와 신트라, 그리고 벨렘지구를 위시한 리스본 시가지를 돌아보면서 유럽은 우리에게 어떤 대륙일까라는 자문자답을 던져보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만 해도 대항해시대에 세계를 지배했던 강대국으로 그때 축적한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세상의 영화를 누렸다. 화려한 왕궁을 짓고 예술인들로 하여금 회화적 장식과 도취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케 했다. 물론 하느님에 대한 경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카보 다 로카에 있는 표지판. 이곳의 동식물에 대해 그림과 함께 소개돼 있다. |
우리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유럽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실제로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들의 행렬은 어디서고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유럽인들이 우리를 보는 이면에는 꼭 부러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6·25전쟁이후 프랑스는 우리의 고아 3만 명을 입양했으며 유럽전체에 무려 10만 명의 한국고아를 유럽인들이 입양했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숨길 수 없는 과거이며 유럽인들은 그런 우리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유럽인에게 여러모로 빚진 우리가 인류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그들을 보면서 필자 역시 착잡함을 금하기 어려웠다. 정말로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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