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국]시제(時祭)-추원보본(追遠報本) 제사필성(祭祀必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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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국]시제(時祭)-추원보본(追遠報本) 제사필성(祭祀必誠)

[주역과 세상]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승인 2011-11-02 14:05
  • 신문게재 2011-11-03 21면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쉼 없이 돌고 도는 것이 자연(自然)이라면 자연을 보고 느끼고 본받으려는 것은 인사의 도리일 것이다. 하물며 효자의 마음은 더욱 더하리라.

가을에 서리 내리면 초목의 기운은 귀근한다. 귀근하는 모습을 보며 효자는 슬퍼하는 마음이 생긴다. 추워서가 아니다. 어버이 돌아가셨음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비와 이슬이 내리고 초목이 싹튼다. 마치 어버이가 다시 살아오신 것 같지만 역시 슬픈 마음이 깃든다. 봄철에 봉분의 풀을 차마 깎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모뿐만이 아니다. 근원을 더 거슬러서 조상을 생각하려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니 이래서 생긴 것이 시제(時祭)다. 『공양전』에 '봄제사는 사(祠)라 하고, 여름제사는 약(礿)이라 하고, 가을제사는 상(嘗)이라 하고, 겨울제사는 증(烝)이라'하였다. 1년에 4번을 지내기 때문에 이름이 각각 붙은 것이다.

『주역』에서는 '원형이정(元亨利貞)'으로 표현하는데, 1년에 사시(四時)가 있으니 사시제(四時祭)는 천도를 본받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시제는 과거 사당이 있었던 1년에 4번 지냈을 때의 일이고 지금은 대개 1년에 한 번 지낸다. 따라서 시제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고 '세일사(歲一祀)'라는 용어가 옳을 것이다. 세일사는 대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낸다. 4대조인 고조까지는 기제(忌祭)를 지내므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세일사는 추수가 끝난 뒤 음력 10월 중에 하루를 정해서 지낸다. 음력 10월은 서리가 내린 뒤다. 괘로 표현하자면 곤괘(坤卦: ☷☷)인데, 초목이 귀근하고 동물도 땅 속으로 파고드는 때다.

곤괘 초효에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이른다[履霜 堅氷至]'하니 어떤 문중은 이 글을 취해서 재실 이름을 '이상루(履霜樓)'로 삼기도 했다. 한갓 미물도 근원을 추구하는 시절인데 사람이 이때를 당해서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은 제사를 통해서 근본을 잊지 않으려 했고[不忘本], 근본에 보답하려는[報本] 마음을 갖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 여겼다. 세일사는 1년 중 중요한 행사이므로 과거에는 산통을 들고 점을 쳐서 택일하기도 했다. 대개 정일(丁日)로 잡으니 이는 주역에서 근거한다. 아비의 정신을 자식이 계승하는 내용을 담은 괘가 고괘(蠱卦:☶☴)다.

글 중에 '갑 이전 삼일[先甲三日]과 갑 이후 삼일[後甲三日]'이 있는데, 갑(甲)이 일의 발생을 의미한다. '갑 이전 삼일'은 신일(辛日)이니 십간(十干)의 순서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신(辛)은 곧 신(新)의 뜻이니 즉 일이 생겨난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갑 뒤 삼일'은 정일(丁日)이니 정(丁)은 정녕(丁寧)의 뜻이다. 결과처를 헤아리는 것이니 정일에 와서 일을 마치므로 정을 택한 것이다.

옛 글을 보면 '천제(天祭)는 신일(辛日)을 택하고, 사직단 제사는 갑일(甲日)을 택하고, 종묘등 사당 제사는 정일(丁日)을 택한다'했다. '선갑후갑'의 원리를 취한 것이다. 왕릉에 있는 재실을 '정자각(丁字閣)'이라 하니 역시 같은 원리다. 선갑삼일에서 후갑삼일까지 셈하면 신(辛)에서 정(丁)까지가 7일간이 된다. 정일에 행사를 마치는 것으로 감안한다면, 제사를 지냄에 앞서서 반드시 재계(齋戒)하는 기간을 두었으니 재계기간을 7일로 잡은 것이 바로 '선갑후갑'의 원리에서 취한 것이다.

보통 기제(忌祭)는 3일로 재계하지만 시제는 7일로 잡는다. 재계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목욕재계한 후 옷을 갈아입고, 음주(飮酒)는 어지러운데까지 이르러서는 안되고[飮酒得至亂], 고기와 오신채(五辛菜)를 먹지 말고[食肉得茹葷
], 문병이나 문상하지 말고 음악을 듣지 말고[不弔喪不聽] 등등 무릇 흉하고 불결한 곳을 꺼려야 한다. 제사를 기제(忌祭)라고도 말하는데 '꺼릴기(忌)'자를 쓰는 이유는 오직 돌아가신 분만 추모하고 기타 다른 것은 모두 꺼리라[忌]는 뜻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드리라는 경계사다.

『사자소학』에 '먼 조상을 추모하고 근본에 보답하려면[追遠報本] 제사를 반드시 정성스럽게 지내라[祭祀必誠] 선조가 계시지 않았다면[非有先祖] 내 몸이 어찌 생겼으랴![我身曷生]'라 하였고, 또한 '신도(神道)는 비례불향(非禮弗享)'이라 했다. 예를 갖추지 않고 정성을 드리지 않고 제사를 지낸다면 그 제사는 지내나마나한 제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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