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번 발굴은 한성백제시대부터 공주지역 토착세력이 실재했음을 재확인했다는 데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8호분 내부에서는 금동신발 등이 발견돼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청동기 시대와 초기 삼국시대의 유물도 다수 발견됐다. 웅진백제시대의 공주 송산리고분, 사비백제의 부여 능산리고분과 함께 이제 백제사의 지평은 한층 넓어졌다.
이번 발굴로 부여와 공주에 한정하지 않고 국가적 영향력을 키워가던 당대 백제의 전체상을 그려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웅진 천도 이전에 공주지역에 왕족에 버금가는 토착세력이 존재했음을 알게 한다. 도읍을 옮겨오기 전에도 공주지역이 이미 전략적 거점이었다는 유추까지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수촌리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백제가 공주지역으로 천도하기 전까지는 서울, 경기, 천안 또는 청주 이북에 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기존 사학계의 통념을 깰 중대한 성과로 보인다. 당시 백제의 영향력이 금강 이북인 충남권에 이르렀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백제의 웅진 천도가 방위(防衛)라는 단일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새로운 역사적 가설도 성립하게 해준다. 추가로 4기가 확인된 수촌리 고분 출토 유물로 한성-웅진-사비 시대로 이어지는 백제사의 매듭은 한결 또렷해졌다. 발굴 이후 보존에도 힘쓰면서, 이번 발굴 성과를 기록한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그리고 지역 대학 등 사학계의 활발한 연구를 기대한다.
지역적으로는 과거 백제의 모습을 보다 원형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게 됐다. 출토품들로 백제사를 콘텐츠로 한 역사문화관광 자원의 폭도 그만큼 확장됐다. 고증을 토대로 빈약한 스토리 보완에도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발굴지인 공주 수촌리와 더불어 공산성지구, 송산리고분군, 또 부여 부소산성지구, 정림사지지구, 나성지구 등을 잇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당기는 촉매가 될 것으로 믿는다. 꼭 그렇게 되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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