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하지만 정당이 위기라는 조짐이 어디 이번 선거뿐인가. 재보선을 앞두고 한 여론조사에서 여야 정당들이 제 역할을 하느냐는 물음에 87.9%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73.6%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밝혔다. 정치를 한다면 이때 이미 눈치 챘어야 했다. 뒤늦게 '환골탈태'니 뭐니 하고 호들갑을 떨지만 얼마 못 갈 거라는 걸 국민들은 잘 안다. 경험상 그렇다. 국민이 안다는 거, 사실 그게 더 위기다.
그래서 정당정치의 위기를 말하려는 거냐? 그건 아니다. 그럼 SNS의 위력을 설명할 참이냐? 그것도 아니다. 내년 4월엔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12월엔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있다. 이 중요한 선거들이 이번 선거를 닮아갈까 걱정인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모양새만 보면 시민후보 대 기성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선거였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꽝이다. 정책도 없고 전략도 없었다. 무차별적 의혹제기와 네거티브 공세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등 모든 걸 이분법으로 나눈 선거였다. 구태 정치의 냄새가 진동한다. 감동을 주기는커녕 오죽하면 “이런 치사한 선거는 처음 본다”는 관전평이 나오겠는가.
내년 선거는 좀 비장하게 표현하자면 우리의 앞날 5년을 결정하는 선거다. 그런 선거를 서울시장 보궐선거 모양새로 치를 순 없다. 달라져야 한다. 정당이, 정치인들이 정신 못 차리고 바뀌지 않는다면 유권자인 우리라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 것인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동안 우리는 후보자가 혹은 정당이 일방적으로 내놓은 공약을 보고서 누구를 찍을지 선택해왔다. 그걸 바꿔보는 거다. 대전시민이, 충남도민이, 충북도민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굴해 먼저 내놓는 거다. 그걸 내년 선거에 나설 사람들이 선택해 정책공약으로 담아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당선자가 약속한 것만 받아먹어도 괜찮다. 후보 진영의 똑똑한 싱크탱크들이 머리 싸매고 짜낸 공약인데 오죽하겠는가. 세종시와 과학비즈니스벨트는 그렇게 얻어졌다. 하지만 자기들이 만들었다고 마음에 안 들면 제 맘대로 바꾸려드니 문제다. 그 약속을 지키기까지 충청을 얼마나 들쑤셔댔던가. 그때마다 충청인들은 분노의 목소리로 항변했었다. “우리가 언제 그런 걸 만들어 달라고 했느냐. 당신들이 만들어주겠다고 해놓고는 약속을 깨느냐”고.
우리가 먼저 제시하는 거라면 적어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제안을, 돈은 어떻게 조달해서 어떻게 추진해 뜻한 바를 이뤄낼 것인지, 후보들은 나름대로 제안할 것이다. 그 중 가장 타당성 있는 제안을 한 후보를 밀어주는 것이다. 모름지기 민주주의란 선거를 통해 국민에게 약속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지역민들과 한 약속까지 뒤집진 못할 것이다.
남북관계니, 외교니, 나라 경제니 하는 거창한 대전제들은 그것대로 따로 살펴보면 된다. 우리는 지역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것, 이왕이면 나라 발전에 도움 되는 것, 고령화 저출산 청년실업 지방분권을 위해 꼭 해야 할 것들을 찾아 제안하는 거다. 지역의 지성인 언론 발전연구원 등은 지역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차별화된 의제를 발굴하고 지금부터 이슈화해 나가야 한다. 좀 이르더라도 각각의 주장과 아이디어들이 진지하게 부딪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제대로 된 지역 이슈를 뽑아내고 국책사업도 발굴할 수 있다.
나는 대통령으로 찍을 사람을 이미 점찍어 뒀다. 계룡산 천황봉을 지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다. 내년이면 막힌 지 어느새 4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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