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그 중 하나는 안내표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불편했다는 점이다. 안내표지가 다 '오-월드'라고 되어 대전동물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길을 헤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전동물원이 2009년에 개장한 플라워랜드를 통합하면서 이름을 '오-월드'로 바꾸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표지판에 '(구 대전동물원)'이라고 덧붙이기만 해도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이와 같이 쉬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행정체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잠시 불편했던 것은 지나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황당한 일은 바로 '오-월드'라는 이름이었다. 길을 찾는 중 '오-월드'라는 표지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우리가 찾던 대전동물원이 바로 '오-월드'였다는 것을 알고 실소(失笑)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오-월드'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다. '오-월드(O-WORLD)는 주랜드와 플라워랜드 그리고 조이랜드를 포함하는 종합테마 공원의 새로운 이름이라는 것이다. 주랜드는 영어로 'Zoo Land'일 것이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플라워랜드는 'Flower Land'일 것이다. 꽃동산이라거나 식물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조이랜드는 'Joy Land'일 것이다. 놀이동산이나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오-월드'라고 이름 지은 까닭이나 그 의미는 홈페이지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월드'라는 이름을 지을 당시의 책임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글을 보게 되었다. 오월드(O-WORLD)는 즐거움과 기쁨, 놀라움을 의미하는 감탄사를 응용한 브랜드이며, 동춘당(同春堂)이란 이름이 가진 깊은 뜻에는 못 미치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고민한 끝에 지은 브랜드라는 것이다. 장황하면서도 엉뚱한 논리를 들어가며 오월드라고 이름 지은 것을 그야말로 자찬(自讚)하고 있었다.
'오월드'라는 이름을 자랑하는 사람의 글에 의하면, 개장 이후 9년 동안의 누적 입장객이 1000만 명이나 되며, 전국 1000여 개 학교에서 봄소풍 장소로 오월드를 선택할 만큼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오월드를 다녀간 수 많은 고객들이 동물원이나 식물원 또는 놀이동산을 다녀간 것임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보이는 뻔한 이치다. 그런데, 오월드라는 브랜드 파워 때문에 다녀간 것처럼 해석하려 든다면 아무리 아전인수격 논리라 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오월드니 주랜드니 플라워랜드니 조이랜드라고 하면 영국 사람이 알겠는가? 한국 사람이 알겠는가? 우리 말의 오염, 훼손 정도가 극에 달했다. 국제화시대에 국제적 감각이나 안목이 필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적불명의 국제화주의(Globalism)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외국어 남발 현상은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오월드를 다녀간 입장객 중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절반이라도 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궁색한 대로 오월드라는 이름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한글로 오월드라 표기하지 말고 영어로 'O-World'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입장객의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절반의 내국인들은 어떤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가?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오월드'라는 이름으로는 내·외국인 어느 누구에게도 어색하기만 하다. 이처럼 친숙하지 않은 이름에서 소위 브랜드 파워는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체 오월드는 누구를 위한 이름이란 말인가?
오월드가 전국 1000여 개 학교의 봄소풍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입장객 대부분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놀랍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랜드 파워니 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근시적 사고와 맹목적 교육관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어린 꿈나무들의 터전을 짓밟는 일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한 시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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