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오 월드'는 누구를 위한 이름인가?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달우]'오 월드'는 누구를 위한 이름인가?

[시사 에세이]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1-10-31 14:24
  • 신문게재 2011-11-01 20면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얼마 전인가 대전 동물원을 찾아갔을 때, 겪었던 황당하고 불편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일은 개인적으로 화를 내고 말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언제든 기회가 되면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내심 다짐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고, 여론이 비등해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안내표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불편했다는 점이다. 안내표지가 다 '오-월드'라고 되어 대전동물원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길을 헤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전동물원이 2009년에 개장한 플라워랜드를 통합하면서 이름을 '오-월드'로 바꾸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표지판에 '(구 대전동물원)'이라고 덧붙이기만 해도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텐데…. 이와 같이 쉬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행정체계가 안타깝기만 하다.

잠시 불편했던 것은 지나고 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황당한 일은 바로 '오-월드'라는 이름이었다. 길을 찾는 중 '오-월드'라는 표지를 보고 그것이 무슨 뜻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서야 우리가 찾던 대전동물원이 바로 '오-월드'였다는 것을 알고 실소(失笑)를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오-월드'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았다. '오-월드(O-WORLD)는 주랜드와 플라워랜드 그리고 조이랜드를 포함하는 종합테마 공원의 새로운 이름이라는 것이다. 주랜드는 영어로 'Zoo Land'일 것이다. 동물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플라워랜드는 'Flower Land'일 것이다. 꽃동산이라거나 식물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조이랜드는 'Joy Land'일 것이다. 놀이동산이나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오-월드'라고 이름 지은 까닭이나 그 의미는 홈페이지만 보아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오-월드'라는 이름을 지을 당시의 책임자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글을 보게 되었다. 오월드(O-WORLD)는 즐거움과 기쁨, 놀라움을 의미하는 감탄사를 응용한 브랜드이며, 동춘당(同春堂)이란 이름이 가진 깊은 뜻에는 못 미치겠지만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사람이 고민한 끝에 지은 브랜드라는 것이다. 장황하면서도 엉뚱한 논리를 들어가며 오월드라고 이름 지은 것을 그야말로 자찬(自讚)하고 있었다.

'오월드'라는 이름을 자랑하는 사람의 글에 의하면, 개장 이후 9년 동안의 누적 입장객이 1000만 명이나 되며, 전국 1000여 개 학교에서 봄소풍 장소로 오월드를 선택할 만큼 브랜드 파워를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오월드를 다녀간 수 많은 고객들이 동물원이나 식물원 또는 놀이동산을 다녀간 것임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보이는 뻔한 이치다. 그런데, 오월드라는 브랜드 파워 때문에 다녀간 것처럼 해석하려 든다면 아무리 아전인수격 논리라 해도 너무 심하지 않은가?

오월드니 주랜드니 플라워랜드니 조이랜드라고 하면 영국 사람이 알겠는가? 한국 사람이 알겠는가? 우리 말의 오염, 훼손 정도가 극에 달했다. 국제화시대에 국제적 감각이나 안목이 필요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적불명의 국제화주의(Globalism)에서 비롯된 맹목적인 외국어 남발 현상은 고쳐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 동안 오월드를 다녀간 입장객 중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절반이라도 넘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궁색한 대로 오월드라는 이름이 정당화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런 경우에는 한글로 오월드라 표기하지 말고 영어로 'O-World'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입장객의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하더라도 절반의 내국인들은 어떤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가? 한글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오월드'라는 이름으로는 내·외국인 어느 누구에게도 어색하기만 하다. 이처럼 친숙하지 않은 이름에서 소위 브랜드 파워는 기대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체 오월드는 누구를 위한 이름이란 말인가?

오월드가 전국 1000여 개 학교의 봄소풍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입장객 대부분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이다. 참으로 놀랍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브랜드 파워니 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근시적 사고와 맹목적 교육관이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어린 꿈나무들의 터전을 짓밟는 일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한 시가 급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