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욕쟁이할머니 스토리'의 압권은 따로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국밥집 욕쟁이할머니에 얽힌 실화에는 귀 익은 대사가 나온다. 그것은 “이× 봐라. 니×은 어쩌믄 박정희를 그리도 닮았냐. 이×아. 계란 하나 더 처먹어라”였다. 대통령인 줄 모르고 친근감의 표시로 욕했다는 할머니의 후일담까지도 이제 전설이 됐다.
멋모르고 필자도 전주 고사동의 바로 그 욕쟁이할머니 '삼백집'에 따라갔다가 박 전 대통령보다 더 호된 욕을 얻어들었다. 괜히 욕먹고 기분 나쁘지 않았던 때는 그날 이후로 없었다. 생전의 할머니 욕이 진가를 발휘한 건 콩나물국밥으로 유명해진 다음임을 세월이 오래 흘러서야 깨닫게 됐다. 꾹꾹 말아주는 후한 국밥과 걸쭉한 욕은 굳이 말한다면 마케팅 수단이었다.
돌아보며 생각한다. 음식 맛이 그저 그러면서 욕만 잔뜩 붙은 할머니라면 개시하자마자 300그릇씩 팔 수 있었겠는가. 욕을 잘해 장사가 잘됐다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를 결코 범하지 말라는 것, 이 얘기를 인신공격 정치와 네거티브 캠페인으로도 그냥저냥 표를 챙긴 정치권에 하고 싶다. 장사가 되니 할머니의 욕까지 명물이 된 것이다.
▲ 뉴시스 제공 |
유사한 관례로 '한국선거(Korean vote)'라는 새 어휘가 생성되지는 않을까. 그만큼 보편적 정치 언어를 만나기 힘들었고, 묻지마 폭로, 카더라 비방, 사이버 공간의 인신모독은 이기적인 보수와 무책임한 진보 간 차이가 무의미했다. 실상이 무상한 사이버였다. 충남도의원(서산2선거구) 보궐선거, 당진군의원(가선거구), 보은군의원(나선거구) 재선거는 좀 덜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서산시장과 충주시장 재선거도 초반에 정책 위주의 포지티브로 가나 싶더니 곧 네거티브 전략으로 돌아섰다. 네거티브 창을 막는 방패 또한 네거티브였다. 후보자들은 몰상식의 네거티브에 올라타 최대 수혜자가 되길 염원했다. 모 정당 충북도당의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성명에 선거의 본질이 녹아 있다.
기준은 다른 게 아니었다. 내가 하면 검증, 남이 하면 네거티브였다. 검증이라는 이름의 네거티브가 활어처럼 뛰노는 판에 머리 아픈 지역정책을 들고 나오겠는가. 진짜 검증도 불리해지면 “이건 네거티브야!”를 선언하면 그만이었다. 10·26 재보선은 공적인 검증과 사적인 '신상 털기'의 경계를 허물었다. 정치 지형의 변화, 대권 방정식의 향배와 상관없이, 승패·당락과 무관하게 네거티브의 치명적 유혹에서 못 헤어난 선거였다. 정치는 없고 정치공학만 질펀했다. 맛도 인심도 없이 욕설만 난무하는 국밥집에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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