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그랜드캐니언… 자연·인간이 빚어낸 거룩한 합작품

터키의 그랜드캐니언… 자연·인간이 빚어낸 거룩한 합작품

동서양 잇는 교역로, 로마·비잔틴시대 기독교인의 '망명지' 30개 고대 지하도시 터널로 연결, 250년간 믿음의 장소로

  • 승인 2011-10-24 14:02
  • 신문게재 2011-10-25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의 성지순례 탐방기-그리스·터키를 찾아서] 18.터키의 성지들을 찾아서-카파도키아(상)

▲ 카파도키아의 버섯 바위들.
▲ 카파도키아의 버섯 바위들.

한국가톨릭성지순례단(단장 김정수 바르나바 천안신부동 성당 주임신부)은 성지순례 10일째인 6월 1일 콘야에서 3시간을 달려 카파도키아로 향했다. 콘야 시내를 벗어나 120㎞에 이르는 평야를 가르며 지나가다보면 카파도키아가 보인다. 이곳에서 괴레메 야외박물관과 비둘기 집으로 가득 찬 우치사르, 3개의 버섯 모양 바위로 유명한 파사바 계곡,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낸 지하도시 등을 순례했다. 터키에서 파묵칼레와 더불어 가장 인상적인 곳 중의 한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오묘함에 그저 넋을 잃게 만드는 곳이다.

▲카파도키아=터키의 '그랜드캐니언'이라고 불리는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다. 사람들이 바위를 끼고 살았는데 낙타모양, 버섯 모양, 펭귄 모양, 물개 모양 등 참으로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을 보노라면 조물주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동물처럼 굴을 파고 살았다. 지하로 땅을 파고 내려가 자그마치 250년이나 살았으니 1세대를 30년으로 치면 8세대가 지하에서 산 셈이다.

사람들은 밀라노 칙령 발표로 기독교가 인정받기 전까지 지하도시에서 살았는데 발굴 당시 십자가 형태 토기가 발견됐고, 가상의 큰 도시인 '대림쿠유'도 발견됐다. 지하도시 30개가 발견됐는데 이 지하 도시들은 지상에서는 9㎞가 떨어진 곳이라도 지하에서는 다 연결돼 있어 서로의 신앙을 굳건히 지켜줬다. 성 바실리우스는 최초의 수도원 공동체를 만들었다. 밀라노 칙령 발령 후 사람들은 금욕과 고행을 통해 동굴을 파고 혼자 살았다. 이런 사람들을 '은수자'라고 한다. 사방에서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함께 기도하고 생각하며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갔다.

카파도키아는 막막하리만치 너른 벌판에 솟아오른 기기묘묘한 기암괴석들이 혼을 사로잡는 곳이다.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길고 긴 시간 동안 자연이 공을 들여 만든 작품이다. 수백만년 전 에르시에스 산에서 격렬한 화산 폭발이 있은 후 두꺼운 화산재가 굳어갔다. 그 후 수십만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모래와 용암이 쌓인 지층이 몇 차례의 지각 변동을 거치며 비와 바람에 쓸려 풍화되어 갔다.

▲ 카파도키아의 버섯 바위.
▲ 카파도키아의 버섯 바위.
그렇게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웅회암은 인간이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굴을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날카로운 돌만으로도 절벽을 뚫어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훌륭한 요충지가 되어주었다. 이 바위촌의 첫 입주민들은 로마에서 박해를 피해 건너온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암벽과 바위 계곡 사이를 파고 깎고 다듬어 마구간이 딸린 집들과 납골소와 성채를 만들고, 지하도시까지 건설했다. 결국 카파도키아는 자연과 인간이 공들여 함께 만든 걸작품으로 남았다.

카파도키아 지역은 예부터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한 교역로였다. 하나의 제국이 일어설 때마다 카파도키아는 전쟁터로 변했다. 기원전 18세기에 히타이트인들이 정착한 이후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차례로 이 곳을 점령했다.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기독교인들의 망명지가 되었던 이 곳은 4세기부터 11세기까지 기독교가 번성했다.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암굴 교회와 수도원들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괴레메 야외박물관='괴레메'는 터키어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괴레메 지역 최초의 수도원은 그리스정교회다. 그리스정교회는 스위스 로잔느에서 왕성했다가 멸망했고 터키와 그리스는 서로 인구 교환을 체결하게 됐다. 이들은 교만을 버리고 성욕을 절제했다. 이들은 바위를 하나 팔 때마다 교회를 만들었다.

1년365개 시몬 교회가 괴레메 야외박물관에 있다. 이 곳에서는 수도자들이 자기의 신심을 위해 기도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괴레메 계곡에는 4세기경부터 기독교도가 살았다. 그런데 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슬람교도의 탄압이 심해지자 계곡의 바위를 파서 동굴을 만들고 교회와 수도원을 세웠다. 지금도 이 곳에는 500여 개의 동굴사원이 흩어져 있다.

보존이 잘된 교회 내부에는 기독교인들이 그린 프레스코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성 바르바라 교회, 사과나무의 교회, 어둠의 교회, 뱀의 교회 등의 벽화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이슬람교는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벽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눈은 지워지고 없어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비둘기집으로 가득한 우치사르=괴레메 동굴에서 3㎞ 떨어진 곳에 바위산 우치사르 성채가 있다. 과거 온통 웅회암으로 뒤덮여 있었던 이 곳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터널을 만들어 살았으나 부식 작용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벌집 모양의 바위산이 만들어졌다.

▲ 카파도키아의 삼위일체바위.
▲ 카파도키아의 삼위일체바위.
1300m에 이르는 고지대에 위치한 우치사르는 황량하고 기괴한 주변 풍경이 어딘가 매우 묘해 보이는 곳이다. 기괴한 모습의 바위들로 가득찬 우치사르의 생성 원인은 이 지역이 예전에 바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다가 융기해 이루어진 곳에 다시 화산 활동이 있어 그 위를 화산재들이 덮어버렸다. 이런 것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비바람과 부식작용으로 마모되고 부서져 약한 부분은 모두 깎여 나가고 가장 단단한 암석들만 남아 현재의 기기묘묘한 바위 모습을 갖추게 됐다. 이런 바위들에 수없이 뚫려 있는 구멍들이 바로 비둘기집이다.

이 집들의 주인이었던 비둘기들은 이 곳에 살던 기독교인들에겐 귀한 손님이었다. 성화를 그리기 위한 재료인 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곳 사람들은 비둘기 알에서 염료를 얻어 석굴 예배당의 성화를 채색했다. 최근에는 성채에서 지하 100m에 이르는 곳에 위치한 비밀터널이 발견됐다. 이 곳은 전시에 대비해 물을 공급하던 곳이다. 또 이 특별한 장소를 이용한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들어서 색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파샤바 계곡=샤바 계곡은 송이버섯과 매우 비슷한 버섯바위가 펼쳐져 있는 골짜기다. 현지 사람들은 버섯 바위에 요정들이 살고 있다고 믿어 '요정이 춤추는 바위'라고 부른다. 세상을 등지고 속세를 떠나 신앙생활에 몰두할 것을 주장한 고대 수도사가 살았던 바위가 있어 '수도사의 골짜기'라고도 한다. 버섯 모양의 독특한 바위는 이 곳 특유의 지층 특징 때문에 생긴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어 살았던 곳인데 바위의 거주 공간은 덥고 건조한 기후를 피할 수 있고, 적들에게 노출되지 않아 종교 탄압 시기에 기독교인들의 훌륭한 피란처가 됐다. 파샤바 계곡은 장군 같은 바위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파샤'는 '장군'을 의미한다. 만화영화 '스머프'는 버섯 요정들이 산다는 카파도키아에서 비롯된 것이다. 벨기에 작가 페에르 클리포드는 파샤바 계곡을 다녀간 후 영감을 얻어 만화 '개구쟁이 스머프'를 만들었다. 결국 터키의 파샤바 계곡에서 스머프가 탄생한 셈이다. 1년365개 시몬교회는 바위에서 수도생활하던 수도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네 개 동굴교회에서는 프레스코화를 감상할 수 있다. 성녀 발바라 교회는 곳간, 찬장, 부엌 등이 바위 3개로 나뉘어 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지낸 지하도시 대림쿠유=로마의 '카타콤베'가 죽은 자들의 도시인데 반해 이 곳 카파도키아의 지하도시 '대림쿠유'는 '산 자들의 도시'로, 지하도시에서만 250년을 살았던 기독교도인들의 신앙에 숙연한 마음이 드는 곳이다. 길이 85m까지 내려가는 지하 8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도시에는 로마 제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온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숨어들었다.

▲판매를 위해 진열된 도자기들.
▲판매를 위해 진열된 도자기들.
7세기부터는 이슬람교인들로부터의 박해를 피하는데 사용하는 등 주로 종교적인 이유로 은신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파도키아의 다른 지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예배당, 학교 교실, 식당, 침실, 부엌, 마구간, 창고, 와인 저장고, 식용유 저장고 등 다양한 생활시설이 갖춰져 공동생활에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졌다. 각 층은 독립적으로 구별되고, 긴 터널을 통해 다른 지하 도시들과 연결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박해를 피하는 은신처로 쓰이다 기독교가 합법화되자 수도나 포교 장소로 바뀌었다. 이슬람, 몽골, 티무르군이 침입했을 때는 피란처나 방어보루로 쓰였다. 어린 목동이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다가 우연히 입구를 발견한 이 지하도시는 1965년 공개됐다.

지금까지는 지하 8층까지 발견했으나 모두 20층은 족히 되리라고 짐작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지하 8층까지 내려갔다 왔는데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단 한사람씩만 내려가게 돼 있을 정도로 매우 비좁다. 적이 들어오면 한사람만 희생하면 되기 때문이다. 마치 베트남의 구치터널을 연상시키는 좁은 동굴길이다. 공기 환기구가 68개이고 깊은 우물 밑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곳도 있다. 교회의 십자가 터 흔적도 남아있는 이곳은 지하도시다보니 사람들의 얼굴이 창백하고 비타민 D를 합성하지 못해 머리카락도 하얗고 뼈도 약했다. 또 천장이 낮아 오리걸음으로 다니다보니 앉은뱅이도 많았다. 동굴 벽이 공기와 접촉하면 딱딱해지고 손으로 긁으면 먼지가 발생해 호흡기 질환과 안질환이 많았고 시각장애인도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하 8층이라서 숨쉬기가 어려울 법도 한데 동굴 벽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지 않고 숨 쉬는 돌이라 습기나 먼지를 빨아들이고 있다. 만약 시멘트가 발라져 있었다면 곰팡이 냄새가 났을 것이다.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탄압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렇게 지하에서 긴긴세월을 견뎌야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가엾기도 한 생각이 들었다.

터키 카파도키아=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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