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인술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장 |
우리의 역사를 국사(國史)라고 하고 우리나라 말을 국어(國語)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음악을 국악(國樂)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중한 우리 음악을 우리는 막연히 비과학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도 서양음악 이론에 대해서는 꽤 깊이 있게 배우면서도 우리는 그동안 국악은 양념 삼아 소개에 그치고 한 번쯤 들어보기를 권하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의 음악인 국악과 그다지 친하지 않게 된 데는 그런 영향도 있을 것이다.
지난 7월14일 바로 대전연정국악문화회관의 개관 30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그날은 그야말로 TV연속극의 사극에서만 보아 왔던 왕조의 꿈 태평 서곡이라는 공연을 국립국악원의 연주단을 초청하여 우리 대전에서는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 이 공연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세종대왕과 더불어 2대 명군으로 손꼽히는 정조가 비운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치르는 궁중 연례식을 재현한 공연이다.
정조가 180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수원 봉수당으로 가서 축제를 치르는 8일 간의 장면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의 봉수당진찬도(奉壽堂進饌圖)부분을 재현한 공연으로 '樂, 歌, 舞' 에 연극적 요소가 가미된 총체적 공연무대였다. 관객을 빈객으로 동참시키기 위해 주빈석 혜경궁홍씨(惠慶宮洪氏)를 관객이 있는 방향과 같게 하여 주객이 함께 향연을 누리도록 연출했다.
무대의 중심에 행례와 궁중 춤 정재(呈才)의 공간을 확보하고, 연주자의 위치는 높여서 무대 후편에 배치하였다. 그 효과로 연주의 음향은 무대공간을 통해 웅장하게 울리고, 춤과 의례는 관객석 가까이에서 진행되어 청중과의 교감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자아냈다. 또 당악정재(唐樂呈才)에만 사용되는 의장(儀狀)과 무구(舞具)들을 무대 중앙과 양옆에 배치하여 화려하고 장엄한 연례악의 분위기를 북돋우게 했다.
이와 같이 왕조시대의 궁중음악과 춤은 군왕의 안위와 화평, 왕실의 권위백관과 백성의 충정 등의 표상이었다. 하늘과 땅, 조상에 예(禮)를 갖춰 올리는 제례(祭禮)라든가, 군왕과 백관이 나라의 경축일을 맞아 하례를 올리는 예연(禮宴)왕의 출입에 따랐던 행악(行樂)등은 단순이 귀에 즐거운 음악이 아니라 한번 움직이고 한번 머무는(一動一停) 형식의 음악과 춤은 갖가지 의미와 상징을 함축한 것으로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왕조의 궁중 문화가 단절된 오늘날 암울한 일제 감정기와 도도한 서양 문물의 유입 기를 험난하게 거치면서 전통예술인들이 그나마 이 정도라도 전승할 수 있었던 것이 진정으로 다행한 일이 아닌가 생각 된다.
그런데 이날의 모든 공연을 단순히 귀로만 들었다면 참으로 지루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음악이 주는 재미와 묘미가 있다.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되어 호흡하면서 눈으로도 즐길 수 있는 음악 그것이 바로 우리국악이 아닌가 싶다. 150여명의 단원들이 펼친 이 공연은 5천년의 혼불처럼 그려낸 천년목(千年木)의 기원처럼 우리의 것에 대한 갈구가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모든 관객이 함께 할 수 있었던 감동의 무대였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계승 발전시켜 후손 에게 물려줄 책임과 의무가 있는 것을 가슴깊이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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