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강행vs반발
2. 대전·충남은 어떻게 돼가나
3. 분권 실현 위한 중앙-지방 기능 고려한 개편 필요
4. 전문가 기고
▲ 안성호 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원회 위원·대전대 교수 |
합병을 고려하는 시·군·구는 지난해 합병된 마산·창원·진해와 2006년 4개 시·군 지방자치단체가 도 산하 2개 행정시로 합병·강등된 제주지역이 합병 후 겪는 어려움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 지역에서 합병 후 과거 열세 시·군지역의 발전활력 상실, 주민참여 곤란 등으로 해당 지역주민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2005년 이후 한국에서 지방자치체제 전면 개편을 둘러싸고 진행돼온 치열한 논쟁은 헌정질서에 대한 단일중심 패러다임과 다중심거버넌스 패러다임 간의 대립으로 해석된다. 한국보다 먼저 두 패러다임 간 격돌을 경험했던 미국은 전문가집단의 권고와 주민투표 결과로 지방정부의 대대적 합병을 포기한 결과 오늘날 전형적 다중심거버넌스체제를 이루고 있다. 여느 선진국들도 오랜 세월에 걸쳐 간간이 기초정부의 합병이 이뤄졌지만 대체로 다중심거버넌스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은 다르다. 해방 후 한국의 지방자치체제는 줄곧 단일중심주의적 합병으로 치달았다. 1961년 5·16군사정부에 의해 읍ㆍ면자치가 일거에 군자치로 개편되었고, 1990년대 중반 대폭적인 시·군 합병이 단행되었다. 2005년 이후부터 정치권과 정부는 시·군·자치구 합병과 읍·면·동 폐지, 시·도 광역정부의 약화 내지 파괴를 골자로 하는 지방자치체제 개편을 획책해왔다. 정치권과 정부의 단일중심주의적 지방자치체제 개편의지는 시·군자치 폐지 또는 시·군 합병으로 이미 부분적으로 관철됐다.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일리노 오스트롬은 지방정부 합병이 효율성을 높일 것이라는 '자명한 상식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녀의 연구를 비롯한 국내외의 연구들은 통념과 달리 크고 작은 수많은 일반목적·특별목적 지방정부들이 중층적으로 존재하는 다중심거버넌스체제가 단일중심체제보다 오히려 효율적임을 밝혀왔다. 오스트롬 부부는 이와 같이 통념과 정반대의 연구결과가 밝혀진 것은 다중심거버넌스체제가 고무하는 경쟁, 발언권, 공공기업가정신, 민관공동생산, 가외성에 기인하는 민주적 효율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내외의 이론적ㆍ경험적 연구에 비추어볼 때, 한국 지방자치체제는 민주주의를 심화하고 민주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기존 지방자치체제의 단일중심적 성격을 완화하고 다중심거버넌스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 지방자치체제의 전면 개편이 초래할 혼란과 막대한 유·무형의 비용을 고려한 신중한 개편방안를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런 견지에서 현행 시·군·자치구제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되, 필요한 경우 경계조정·합병·분할에 관한 자율 결정을 유도하고, 읍·면·동을 준자치행정계층으로 격상하며, 광역시와 도의 자율 합병을 유도하고, 지방자치단체 간 광역행정협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보충성원칙에 입각한 정부간관계 구축을 위해 대의민주제와 참여민주제의 적절한 결합을 수반하는 획기적 지방분권개혁이 요구된다.
요컨대, 시·군·구 합병은 삼가야 한다. 시·군·구의 광역행정수요는 합병이 아니라 경제조정을 포함한 부드러운 광역협력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며, 부득이 합병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주민투표를 통해 해당 시·군·구 주민의 승인을 받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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