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호 대전시교육감 |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경영의 천재로서 그가 남긴 많은 명언들이 언론을 장식하지만 정작 그가 부와 물질에 대해 언급한 얘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1996년 미국의 '와이어드' 잡지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무덤 안에서 가장 부자가 되는 것보다 매일 밤잠자리에 들 때 오늘도 놀라운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잡스의 이 말은 청렴에 대한 공직자의 책무성을 생각할 때 어떤 말보다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물질보다 일의 보람에 무게중심을 두고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거부가 되었을지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욕구 충족을 희구하지만 문명은 인간이 욕구 충족을 포기한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욕구 충족의 인간이 동물적인 본능에 충실한 인간이라 한다면 문명적 인간은 본능이 억압된 인간이라 하겠다. 억압 없는 문명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명 창조의 중심에 본능이 억압된 공직자의 절제와 청렴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공직자의 올바른 처신과 청렴을 강조하는 예로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라는 예화가 있다. 양쪽에 동질(同質)·동량(同量)의 먹이를 놓아두었을 때 당나귀가 어느 쪽 먹이를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여 아사(餓死)한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철학자 뷔리당이 한 말로 두 개의 동등한 힘의 모티브 사이에서 의지를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된다. 욕망과 절제는 보통의 인간에게는 동등한 힘으로 내재되어 있다. 공직자에게는 보통의 인간을 뛰어넘는 문명적인 인간이 요구되는 것이다.
공직자의 청렴을 말할 때 드는 예화가 또 하나 있다. 연암 박지원의 '공작광문고자서'(孔雀館文槁自序)에 나오는 귀 울음(耳鳴)과 코골기(鼻鳴)에 관한 이야기다. 귀 울음은 자신은 듣지만 남은 못 듣는다. 반면에 코골기는 남은 듣지만 자신은 못 듣는다.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나나 남이나 어느 한쪽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두 현상은 나든 남이든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주는 존재임에는 분명하다.
매년 우리 공직사회는 내부와 외부에서 청렴도를 측정한다. 그런데 결과를 받아보면 공직자 자신이 느끼는 내부 청렴도와 시민이 느끼는 외부 청렴도의 차이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공직자들은 대개가 청렴하다고 느끼고 있는 반면에 시민들은 공무원들이 별로 청렴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공직자와 시민 모두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일부 부패된 공직자의 경우를 언론에서 접하게 되면 시민들은 공직자 모두가 부패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대부분 공무원들은 부패는 일부 일탈한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며, 대다수는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귀 울음과 코골기의 비유와 다를 바 없다.
수확의 계절 가을이 왔다. 한 해를 돌아볼 때 솟아오르는 욕망에 대한 절제의 힘을 얼마나 강하게 다스리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다 문명화 시키기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스스로를 반추해 본다. 매화는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결코 그 향기를 팔아 안락을 구하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고 한다. 시민들이 공직자에게 잠시 맡겨둔 소중한 공직(公職)을 믿음과 신뢰로써 지켜야 하는 것, 청렴 세상으로 로그인(log-in)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선진화된 문명사회를 이끄는 이 시대 공직자들의 소임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