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시루떡 - 신과 인간의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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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찬]시루떡 - 신과 인간의 교감

  • 승인 2011-10-11 14:44
  • 신문게재 2011-10-12 21면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요즈음 들녘에서는 추수가 한창이다.

가운데서도 우리 겨레의 삶을 지탱해 온 오곡 가운데 쌀을 수확하고 있다. 농사의 풍년과 흉작은 이 쌀 수확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그 잣대가 되었다.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기준도 이 쌀 수확에 따랐다.

그만큼 쌀은 소중하였고 신과 교감하는 물질로 승화되었다. 단순히 인간의 먹을거리로만 인식되지 않았다. 신에게 바치는, 신과 함께 나누는 아주 신성한 물질로 인식하였다.

그러므로 쌀 한톨, 밥 한알도 소중히 여겨서 함부로 하지 않았다. 쌀을 신에게 바치면서 삶의 풍요를 기원할 때 여러 가지 장치와 방법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떡을 만들어 신과 인간이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절기마다, 명절마다 흰떡이니 송편이니 하여 특정한 제의에 맞는 떡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신성하게 여겼고 모든 신과 인간을 아우르면서 함께 나누었던 것이 바로 시루떡이다. 지금도 우리 고유의 행사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시루떡인데 떡을 찌는 그릇인 시루 대신 철판으로 만든 용기에 쌀가루와 붉은 팥을 켜켜이 쌓아 쪄 낸 점이 다르다.

시루떡은 시루에 찐다. 시루는 질그릇으로 양동이처럼 만들고 바닥에 구멍을 뚫어서 그 사이로 뜨거운 수증기가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 시루를 이용해서 떡을 찔 때는 큰 가마솥에 물을 가득 넣고 가마솥 아가리에 알맞은 시루를 찾아서 쌀가루와 붉은 팥을 켜켜이 쌓은 뒤에 얹어 놓고 아궁이에 불을 때면 가마솥안의 물이 끓으면서 뜨거운 수증기가 일정한 압력을 가지고 시루의 구멍을 통하여 올라오게 된다.

이때 수증기가 다른데로 빠져 나가지 않도록 가마솥과 시루 사이의 틈새를 밀반죽이나 부드러운 천으로 꼭꼭 눌러 막는다. 시루떡을 잘 익히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시루떡을 쪘다. 목욕재계도 하고 화장실에도 가지 않고 개고기 먹은 사람이나 상을 당한 사람도 시루떡을 찌는데 들어 와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자칫하면 시루떡이 잘 익지 않고 설기 때문이다. 특히 추수가 시작되는 10월에는 처음 수확한 벼를 찧은 쌀로 시루떡을 만들어 집안의 여러 신령들에게 먼저 바쳐서 가정의 건강과 행복, 아이들의 공부까지도 축원하고 마을의 여러 집들과 나누어 먹었다.

산신제 등 마을의례를 마친 뒤에 각 가정에서 마을에 내려온 신을 맞이하여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던 마짐시루라는 떡시루도 있었다. 이렇듯 시루떡에도 신과 교감하면서 서로 나누고 베풀던 따뜻한 정이 서려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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