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도 없이 헐린 건축물들은 이제 일부 시민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다. 대사동 별당이 헐려도 보존을 강제할 수단이 없었다면 그만이고,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옛 산업은행에 무슨 박물관을 만든다는 등의 허망한 말치레만 오갔을 뿐이다. 일제가 경제권 장악을 위해 지은 건물이지만 대전 역사의 한 문맥을 간직한 곳 아니던가.
한마디로 근대문화유산을 그저 낡은 부동산으로나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힘으로 지켜낸 울릉도의 이영관 가옥, 조정래의 소설 무대인 보성여관 등의 선례가 돋보이는 이유다. 다른 수단이 불가능하다면 예산을 확보해서라도 소중한 유산이 망가지고 헐리는 일은 막아야 한다.
조사에서 새로 찾은 61채의 근대 건축물에 대한 보존대책도 서둘러 내놓아야 할 것이다. 서울 가회동과 경남 함양에서 문화유산인 한옥을 매입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예도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조사와 등록만으로 끝내지 말고 보존 및 관리 상태 점검 등 후속조치가 따라야 한다.
또한 개발 압력을 견디고 남은 것과 새로 파악된 건축물 중 유지 관리가 어렵고 실질적인 보호 방법이 없으면 직접 사들여서라도 존속시켜야 할 것이다. 그곳을 역사와 삶을 돌아보는 도시의 악센트 같은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근대건축물 등이 남아 있는 가로를 테마길이나 골목재생 사업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있겠다.
조사 보고서를 토대로 건축물, 산업구조물, 역사유적 등 210점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정밀 실사 작업부터 벌이길 바란다. 남은 근대건축물들의 운명이 어찌될지 누구도 모른다면 이는 문화유산에 대한 모독이다. 당대만이 아닌 역사성을 오래 지속시킬 실효적 방안이 나와야 할 때다. 한 시대를 이해하는 상징적 기호인 문화유산을 멸실 위기에서 건져내는 일은 우리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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