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규 한남대 생활체육학과 교수 |
'괜찮아유'나 '됐슈'와 같은 말들이 갖는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 완곡한 거절이나 부정의 뜻을 담기도 한다는 것을 타 지역사람으로서는 이해 못할 수 있음을 서울토박이인 집사람을 통해서도 평소에 느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역적 특성이 묻어나는 반어적 대화법은 1980년대 코미디프로의 '괜찮아유'라는 코너에서 최양락과 김학래가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큰 인기를 얻기도 하였다. 두 개그맨이 서로 상대 집안의 부끄러운 일을 끄집어내면 '괜찮아유'를 연발한다. 피상적으로만 보면 상심한 마음과는 달리 말로는 괜찮다고 하는 충청인의 이중성과 뒤끝 있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러나 풍자적인 과장을 벗겨내고 바라보면 '괜찮아유'의 어법에서 어떠한 비난이나 곤경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긍정의 정신과 은인자중하는 기질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속을 모르겠다'거나 '겉 다르고 속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은 충청도식 소통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비롯된 편견이다.
왜 충청도사람은 처음부터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소한 문제에 대해 성급하게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결론을 바로 내리기에는 판단의 근거나 자료가 미흡하므로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질문자가 이미 결론을 내리고 나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성격과 소통방식을 갖고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사회는 같은 지역출신, 같은 종씨이므로 또는 같은 학교를 나와서 갖는 동류의식이 매우 강하다. 동류의식이 지나치게 강하다보니 상대의 견해를 들어보기도 전에 지레 짐작으로 같은 지역이나 동문, 같은 당파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자기에게 동의할 것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해버린다. 이런 유의 사람에게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것이고, 적을 만드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작은 일로 생각되는 일에 대해 굳이 거절이나 부정의 뜻을 밝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굽힐 수 없는 '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내놓는 강직함이 있다. 역사적으로 충청도에 유난히 충신과 열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고 한다.
리더십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된다. 그러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팔로십을 가져야 한다. 충청도인에게는 훌륭한 팔로십의 핏줄이 흐른다. 팔로십은 사회나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에 헌신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이해하여 자신을 상대에 맞춰주는 정신이다. 좋은 팔로어가 많을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 물론 좋은 팔로어는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리더에게는 저항한다.
최악의 팔로어는 안티들이다. 안티는 타인의 흠과 상처를 즐길 뿐 자신을 성찰하는 거울은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은 자신만의 잣대로 '아니다'라고 하며 노골적으로 혐오감의 이빨을 드러낸다.
이 사회에는 충청도식 소통방식이 필요하다. '괜찮아유'에는 역지사지 할 줄 아는 긍정의 정신이 있다. 먼저 상대의 입장에 서서 '괜찮아유'를 해석하면 그 말에서 관용과 배려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진정한 소통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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