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범인임이 분명한 용의자를 물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풀어줄 순 없다는 검사. '만질 수 있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라는 변호사. 검찰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사내를 범인으로 모는지, 사내가 과연 진짜 범인인지 아니면 누가 범인인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영화는 법정을 향해 달려간다.
'국내 최초 법정스릴러'를 내세우는 '의뢰인'은 법정 공방의 외피를 두른 추리극. 사건의 정황을 검사와 변호사가 펼치는 치열한 공방전으로 재구성하는 형식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2008년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배심원 앞에서 펼치는 검찰과 변호사의 논리대결을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 '의뢰인'은 그 첫 시도다. 그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배심원을 설득하려는 검사와 변호사의 화려한 말솜씨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상대가 허점을 보이는 순간 재빨리 파고드는 '말의 액션'이 흥미진진하다.
이를 설득력있게 스크린에 펼쳐놓는 건 배우들의 몫. 검사역의 박희순은 군더더기 없는 냉철한 연기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이에 맞서는 변호사 하정우는 헐렁한 연기로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에 숨통을 틔운다. 극중 인물 강성희라면 꼭 그럴 것 같은 말투에, 어깨를 으쓱거리는 행동은 웃음을 자아내고 극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장혁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텅 빈 듯한 연기로 용의자 역을 십분 살렸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섬세한 표정연기는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영화 내내 힘을 발휘한다.
'의뢰인'은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범인이 누군지에 대한 문제보다 한 사람에 대한 다수의 선입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통렬하게 꼬집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질 것이다. 따분한 '법정 공방'을 속도감 넘치는 스릴러로 전개해 관객의 눈을 붙잡는 솜씨, 긴장감 팽팽한 법정의 공기를 객석에 고스란히 전하는 연출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손영성 감독은 전작 '약탈자들'(2008년)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상업영화로는 이번 '의뢰인'이 데뷔작이다. 관객을 설득시키는 치밀한 스토리텔링은 압권이다. 또 한 명의 탁월한 이야기꾼이 탄생했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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