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호 배재대 총장 |
정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고 작성 중이던 원고도 자동 저장되어 문서는 제 시간에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인터넷, 텔레비전, 신문 등의 매체를 통해 이번의 정전이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 하나의 '사태'가 되는 것을 목도했다. 정전은 으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또한 나에겐 큰 불편을 초래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전은 하나의 사태로 불릴 만큼 엄청난 일이었는지 매초, 분 단위로 정전에 대한 기사가 갱신되었다. 그날 밤 아홉시 뉴스의 헤드라인은 정전사태에 관한 것이었고 뉴스 내용의 절반 이상이 정전에 대한 보도로 채워졌다. 그 보도와 기사들을 접하다보니 그만 덜컥 불안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정전이 일어났다는 사실보다는 정전으로 인해 현재의 삶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전기는 이제 현대인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다. 공장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가정의 모든 가전제품들, 그리고 손에 쥔 휴대전화도 모두 전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전기는 우리에게 공기 같은 것이 된 것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한밤중에 정전이 되면 자연스레 촛불을 켜면 그만이었고, 낮에 정전이 되었다 해도 사실 정전이 일어난 지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요즘의 경우는 다르다. 전기제품으로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전기의 차단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를 차단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먹을거리부터 시작해서 입고 사는 것 대부분의 활동이 전기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삶의 대부분을 전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지낸 것이다.
한마디로 전기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냉동실에 넣어둔 먹을거리는 몇 달이 지나도 썩지 않고 외부온도가 30를 육박하는 날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지낼 수 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쓰던 글은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땀에 전 옷은 세탁기를 돌리는 것으로 대체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썩지 않는 음식들과, 한여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음식은 썩는 것이 당연하고 한여름 뙤약볕 밑에서는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당연한 것들이 과학의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거나 배제되고 있었다. 당장 걷는 것보다는 자동차를 굴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 자리에서 에너지 절약이니 절전이니 하는 상투적이고 낡아빠진 말들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의 삶 중 중요한 무언가를 다른 존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고 싶다. 음식이 썩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고, 뙤약볕 아래에서도 땀을 흘리지 못하는 몸도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기가 단절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은 전기를 느꼈다. 전기가 끊어진 것에 불안하고 화가 났다면 전기가 우리의 삶을 옥죄는 하나의 사슬이 될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과학의 이름으로, 혹은 첨단이라는 선전으로 우리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과학에 혹은 전기에 빚지고 있다. 물론 이것을 우리는 무엇으로 갚을지는 모르지만, 과학이 문명의 이기임과 동시에 문명이 가진 족쇄가 될 것 같은 좋지 않은 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전기가 단절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보다, 전기가 단절됨으로 인해 우리 삶의 어떤 부분도 같이 단절되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전되고 나서야 겨우 모니터에 박았던 시선을 뽑아 창밖 햇살의 기울기가 많이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가을이 깊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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