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우]나라는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이달우]나라는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사 에세이]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1-09-26 14:36
  • 신문게재 2011-09-27 20면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지난 15일 수도권 46만 가구, 강원·충청 22만 가구, 호남 34만 가구, 영남 60만 가구 등 전국 162만 가구에 30분씩 순환정전이 단행되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분초를 다투는 수술을 하던 중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무섭고 치가 떨리는 일이다.

전기는 현대문명을 지탱하는 인체의 혈관과 같은 기본 동력원이다. 전기가 없으면 어떤 문명의 이기(利器)도 작동되지 않는다. 죽는다는 말이다. 더 분명히 말하면 그날 불의의 정전을 겪었던 162만 가구에게 적어도 30분 동안은 나라가 망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번의 정전사고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16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늦더위가 예고되었지만 한국전력공사가 전력수요 예측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요 발전시설의 정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하게 된 것이라 한다. 아울러 예비전력이 안정수준 밑으로 떨어져 300만에 이르자 '예비전력이 100만 미만으로 떨어졌을 경우 전력공급을 강제적으로 차단한다'는 매뉴얼을 무시한 채 황급히 순환정전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한 잘못에 대해서도 지적하였다.

17일자 신문에서는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행태와 의식, 우리 사회의 매뉴얼 무시 관행이 잘못되었음을 보도하는 한편, 단전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한국전력공사를 찾아가 책상을 치며 질책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22일자에서는 모 야당 의원의 주장이라는 전제하에 15일의 단전사고 때 예비전력이 지식경제부의 발표처럼 24만가 아니라 블랙아웃(Black out) 상황이 벌어지는 제로(0)까지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16일자 보도에서 매뉴얼도 무시한 채 황급하게 순환정전이라는 비상조치를 취한 것도 이런 까닭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24일자에서는 15일의 대정전 사고 때 전력거래소 이사장, 지식경제부 장관, 한국전력 사장 등 전력 관련업무의 수뇌부 3명이 사고의 지휘현장에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번의 정전사고 이후의 과정을 보면, 사고의 발단에서부터 사후대책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초려(草廬) 이유태(李惟泰) 선생의 기해봉사(己亥封事)가 생각난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4만여 자에 달하는 상소문에서 초려는 왜호(倭胡) 양란(兩亂) 이후 피폐해진 당시 조선사회를 '나라는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有國無之)'라고 진단하고, 국정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개혁의 방책을 제시한 바 있다. 정풍속(正風俗), 양인재(養人材), 혁구폐(革舊弊)가 초려 개혁안의 핵심이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자. 한국전력공사는 50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도 변명에 급급할 뿐이다. 여론이나 정책 당국자, 국회 등에서도 책임을 추궁하거나 뒤늦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사안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한국전력공사를 찾아가 책상을 치며 질책했다는 기사까지 나왔는데, 대통령이 분노가 아닌 통치행위의 형태로 이번 사고의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라는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은 같으나 그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는 판이하게 다르다. 초려 선생은 개혁이 일시적인 대증요법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통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낡은 폐단을 고치는 일도 시급하지만 그와 동시에 풍속을 바로잡는 일과 제대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 등 완급을 고려한 근원적인 처방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근본과 지엽말단이 있는 법이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이후 책임을 회피, 전가하거나 추궁하는 움직임은 많아도 근본적인 대책을 꼭 짚어내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초려가 만언봉사(萬言奉事)에서 국정 개혁의 골자로 논한 '정풍속'과 '양인재'는 바로 교육이다. 국가나 사회의 어떤 개혁에 있어서도 교육보다 우선하는 것은 없다. 교육을 통한 개혁이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근원적인 대책인 교육을 통해 국민의 의식과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빈발하는 '간장이 얼고 소금이 시는' 그런 일이 줄어들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충남대학교 동문 언론인 간담회
  2. 대전성모병원, 개원의를 위한 심장내과 연수강좌 개최
  3. 대전 출신 오주영 대한세팍타크로협회장, 대한체육회장 선거 출사표
  4. 대전 정림동 아파트 뺑소니…결국 음주운전 혐의 빠져
  5. 전국 아파트값 하락세… 대전·세종 낙폭 확대
  1. 육군 제32보병사단 김지면 소장 취임…"통합방위 고도화"
  2.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 체포…피해 귀금속 모두 회수 (종합)
  3.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트리 불빛처럼 사회 그늘진 곳 밝힐 것"
  4. '꿈돌이가 살아있다?'… '지역 최초' 대전시청사에 3D 전광판 상륙
  5. 대전 둔산동 금은방 털이범…2000만 원 귀금속 훔쳐 도주

헤드라인 뉴스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AIDT 제동 걸리나… 교과서 지위 박탈 법안 국회 교육위 통과

교육부가 추진 중인 인공지능디지털교과서(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전면 시행이 위기에 직면했다. 교과서의 지위를 교육자료로 변경하는 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정책 방향이 대폭 변경될 수 있는 처지에 놓였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8일 열린 13차 전체회의에서 AIDT 도입과 관련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은 교과서의 정의에 대한 부분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현재 '교과서'인 AIDT를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모든 학교가 의무..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라면 먹고갈래?"… 대전시, 꿈돌이 캐틱터 입힌 라면 제작한다

대전시가 지역 마스코트인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으로 '꿈돌이 라면' 제작을 추진한다. 28일 시에 따르면 이날 대전관광공사·(주)아이씨푸드와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 및 공동브랜딩'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대전 꿈씨 캐릭터 굿즈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라면제품 상품화'를 위해 이장우 대전시장과 윤성국 대전관광공사 사장, 박균익 ㈜아이씨푸드 대표가 참석했다. 이에 대전 대표 캐릭터인 꿈씨 패밀리를 활용한 '대전 꿈돌이 라면' 상품화·공동 브랜딩, 판매, 홍보, 지역 상생 등 상호 유기..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 30년 숙원 태안 안면도 관광지 '성공 개발' 힘 모은다

충남도가 30년 묵은 숙제인 안면도 관광지 조성 사업 성공 추진을 위해 도의회, 태안군, 충남개발공사, 하나증권, 온더웨스트, 안면도 주민 등과 손을 맞잡았다. 김태흠 지사는 28일 도청 상황실에서 홍성현 도의회 의장, 가세로 태안군수, 김병근 충남개발공사 사장, 서정훈 온더웨스트 대표이사, 강성묵 하나증권 대표이사, 김금하 안면도관광개발추진협의회 위원장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자리에는 하나증권 지주사인 하나금융그룹 함영주 회장도 참석, 안면도 관광지 개발 사업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안면도 관광지 3·4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야구장에서 즐기는 스케이트…‘아듀! 이글스파크’

  •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금연구역 흡연…내년부터 과태료 5만원 상향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