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응국 주역학자·홍역사상연구소장 |
얼마 전에 몰고 왔던 '안철수 바람'을 느끼면서 문득 맹자의 이 글이 떠올랐다. 서울시장출마를 고려한다는 그의 한마디에 지지율은 순식간에 50%를 넘어섰고, 그를 대항할 정당정치인들이 없는 것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도덕이나 윤리와 담을 쌓은 기성 정치인들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한 것 같아서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뚫린 것 같아 한 때나마 후련하기만 했다. '아직도 도덕의 가치가 이 사회에 남아 있고 인정이 살아있구나' '사람들이 도덕과 인의에 갈증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도 한 점의 이해타산 없이 진퇴(進退)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찬양의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과연 정당정치는 민주사회에 필요한 것일까? 혹자는 과거 왕정시대의 필요수단이었고, 민주시대에는 절대악이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사람의 탓이지 제도의 문제로 귀결지어서는 안될 것 같다.
요즘엔 당(黨)이란 용어를 즐겨 쓰지만 과거에는 당의 의미를 좋지 않은 뜻으로 해석했다. 대개 붕당(朋黨)이란 용어는 있지만 상고시대에는 붕당이란 결합된 용어는 없었던 것 같고, 다만 『홍범구주』에 붕(朋)과 당(黨)이란 글자가 나온다. 홍범은 인사 즉 정치의 도리를 오행학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홍범에서 붕당(朋黨)의 근거하는 바를 찾을 수 있는데, 그런데 '붕'과 '당'의 글자가 갖는 의미는 다르다. '붕'은 두 개의 '달 월(月)'자를 썼다. 한 스승 밑에서 같은 도를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무리를 말한다. 이에 비해서 '당'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을 가리킨다.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숭상할 상(尙)'자에 '검을 흑(黑)'자로서 흑을 숭상하는 무리를 말한다. 즉 군자의 무리를 붕(朋)이라 하고, 소인의 무리를 당(黨)이라 말하는 바, 바로 이런 의미의 당이라는 용어를 써서 그런지 오늘날의 정당의 모습이 꼭 이와 같다.
구양수는 '소인(小人)은 무붕(無朋)이요, 군자(君子)는 유붕(有朋)이라' 하였다. 소인들은 붕당을 만들 수 없고 군자만이 붕당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이는 달리 말한 것이 아니다. 소인은 이해(利害)에 밝고 군자는 의리(義理)에 밝다. 이익을 찾아서 모인 집단은 이해가 상충하면 모임이 깨지고 말지만 의리로 모인 집단은 이해가 상충되더라도 도를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선과 악은 사람으로 인해서 나오는 것이지 제도나 도구 자체에 선악이 있지 않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흑색일 때 백색이 눈에 띄듯이, 세상 모두가 이해에 집착하고 있을 때 어진 덕을 지닌 자가 나타난다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릴 것임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안철수 바람'을 몸으로 느끼면서 한편으론 정당정치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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