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갑동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
하늘을 보면서 '천명(天命)'이란 말을 떠올리곤 한다. 이 천명은 예부터 왕조가 바뀔 때 흔히 쓰이곤 했다.
천명 사상은 동양의 전통적인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것이었다. 모든 삼라 만상은 음과 양의 상호보완적인 두 기운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모든 변화하는 현상은 오행의 작용에 의한 것이라 보았다.
오행은 화(火), 수(水), 목(木), 금(金), 토(土)를 말한다. 이 오행은 상생(相生) 작용과 상승(相勝) 작용을 하면서 서로의 기운을 살려내기도 하고 제압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나타나고 색깔, 맛의 변화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다. 또 이를 인체에 적용시킨 것이 바로 한의학이다.
이러한 모든 기운을 사실상 통제하는 것은 하늘(天)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전지전능하여 함부로 형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대신 아들을 내려보내 천하(天下)를 통치하게 한다. 그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 천자(天子)인 것이다.
하느님은 천자를 지상에 내려보낼 때 음양오행의 원칙에 입각해서 백성들을 통치하도록 명령한다. 그것이 천명(天命)이다.
천자는 천명에 따라야 하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고 욕심을 부려 백성들을 괴롭히고 착취할 때에는 하늘의 꾸짖음이 온다. 그것이 바로 천견(天譴)이다. 천견은 자연재해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천명을 어길 때는 천명을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는데 그것을 혁명(革命)이라 하였다.
이렇게 되면 종래에는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천자 노릇을 하다가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이 통치자가 된다. 이제 천자, 즉 통치자의 성이 바뀌었다 하여 이를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 하였다.
이 천명은 통치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반 백성들 즉 농민들에게도 음양오행에 의한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각기 주어진 일이 있었다. 이 또한 하느님의 명령이었다. 그달 그달 행해야할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이를 노래로 읊은 것이 바로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였다.
그러나 천명을 잘 알고 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에겐 끝없는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 같은 성인도 만년에 자신이 일생을 회고하면서 50이 되어서야 천명을 알았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50의 나이를 '지천명(知天命)'이라 하게 되었다. 50이 되면 하늘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과 임무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천명으로 부여된 이상의 일을 하려 하거나 지나친 욕심을 부리면 이 역시 하늘의 징벌을 받는 것이다.
최근에도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사람들이 서로의 욕심을 부리다가 상처를 받은 사례가 있다. 서울시의 시민투표가 그것이다. 꼭 그렇게 끝까지 욕심을 부리고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고자 하여 투표까지 가야 했던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씩 양보하고 여기까지가 나에게 주어진 천명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이와 같은 파국은 막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어떠한 이념이나 정책, 제도도 완벽한 것은 없다. 개인의 신념이나 주장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가끔씩은 적당한 선에서 만족하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마음과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을 하늘을 보면서 새삼 '천명'과 함께 '안분지족(安分知足)'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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