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철]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널리 알려진 판단

[강신철]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널리 알려진 판단

역사를 쓴 저자에 초점 맞춰 읽어야… 새 역사관 제시한 현대고전

  • 승인 2011-09-13 16:01
  • 신문게재 2011-09-14 12면
  • 강신철 백북스 운영위원장강신철 백북스 운영위원장
[백북스와 함께 읽는 책-역사란 무엇인가]

저자 E.H. 카는 1892년 런던에서 출생하여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외무부에 근무한 후, 웨일스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국제정치학 교수를 역임했다. 타임지의 부편집인, 옥스퍼드대 베일리얼 칼리지 정치학 튜터직을 맡기도 했고,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 칼리지 펠로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소련사, 볼셰비키 혁명, 계획경제의 기초, 소련의 충격과 서구세계, 새로운 사회, 평화의 조건 등이 있다.

▲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은 역사가와 그의 사실, 사회와 개인, 역사, 과학 그리고 도덕, 역사에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지평선의 확대 등, 저자가 1960년에 행한 여섯 차례에 걸친 강연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는 있으나 역사가가 처해 있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주관적 가치에 따라 그 사실을 해석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과 문헌 사료는 역사가에게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에 매몰돼서는 안되며,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 역사가의 눈을 통해서 그리고 현재의 문제들에 비추어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고, 역사가의 주요한 임무는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해석하는 것이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의 사실들은 순수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가가 사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적 사실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란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라, 관계의 객관성, 즉 사실과 해석 사이의 관계 또는 과거,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의 객관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서의 객관성이라는 것도 어느 특정한 시점에 존재하는 고정불변의 판단기준에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진행됨에 따라 달라지는 기준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따라서 역사가는 자기가 속해있는 시대의 사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또한 역사가의 지식은 오로지 그만의 개인적인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여러 세대에 걸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역사의 지식을 축적하는데 기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의 기능은 과거를 사랑하거나 자신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열쇠로서 과거를 재해석하고 이해시켜주는 데 있다. 따라서 위대한 역사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이 과거에 대한 역사가의 시야를 밝혀주는 바로 그때 쓰인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우리의 역사에 대한 방향감각, 즉 과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우리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발전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과거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리고 현재의 사회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을 증대시키는 것, 이것이 역사의 이중적인 기능이라는 것이다.

역사에서 뭔가는 배운다는 것은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배우기도 하지만, 현재에 비추어 과거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역사의 기능은 과거와 현재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그 두 가지 모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진전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는 끝없는 역사의 사슬 속에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역사를 생산하는 역사가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하는 독자들에게도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준다. 역사가의 정신 속에서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존하지만, 그 재구성의 과정이 역사가가 과학적 연구태도를 가지고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어떤 목적과 가치에 따라 어떤 특정한 사실들을 선택하고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우리가 어떤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의 관심은 그 책에 포함되어 있는 사실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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