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만년동 한 오피스텔의 12층 꼭대기. 넓은 창 가득 한밭수목원과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대전 유일의 현악기 제작소, ‘비노 클래식’이 있다.
이곳에서 제작한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가 전시된 공간을 지나 좁은 복도로 들어서면 왼편에 악기가 제작되는 작업공간이 있고 그 곳에서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구자홍(38) 대표를 만났다.
구 대표는 대전 유일의 현악기 제작 마에스트로. 마에스트로는 이탈리어어로 예술가, 전문가를 뜻하기에 우리말로 하면 ‘현악기 제작 장인(匠人)’이라고 할 수 있다. 구대표의 작업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작업도구들을 보면 악기들이 얼마나 섬세한 제작과정을 거치는지, 과정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장인의 땀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지를 설명 없이도 실감할 수 있었다.
▲ 어릴적 상처로 인해 연주자의 꿈은 접었지만 악기 제작자로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는 구자홍 대표. 악기를 점검하는 진지한 표정 속에 '음악 사랑'과 노력이 엿보인다. |
두 명의 제자와 함께 일하고 있는 구 대표는 비올라를 전공한 연주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릴 적 왼손에 입었던 화상 때문에 다양하면서도 섬세한 연주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할 즈음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서있던 어느 날, 우연히 악기상에 들른 구 대표는 악기의 제작, 수리를 배울 수 있는 장소도, 시스템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고, 고심 끝에 악기 제작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그렇게 1997년 유학을 떠나 악기를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제작자로 현지에서도 주목 받았던 구 대표는 유학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새로운 꿈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한계 때문에 연주를 계속할 수 없었기에 구 대표는 여러 상황과 환경 때문에 연주를 할 수 없던 젊은 연주자들에게 연주기회를 주고 싶었다.
유성의 작은 오피스텔에 있던 악기제작공간을 떠나 만년동에 새로운 둥지를 튼 것도 이 때문. 전망까지 확 트인 이곳에 악기제작공간 뿐만아니라 연주회 공간도 마련했고 지난해 12월에는 ‘비노 클래식’ 기획의 첫 연주회도 열었다. 올 8월까지 총 8번 진행된 비노 클래식의 모든 공연은 전석이 무료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더 많은 연주기회를 줌으로써 높은 수준의 대전 연주자를 양성하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다”고 말하는 구 대표는 최근 또 다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전 시민이 직접 악기를 만들어서 자신의 이름과 ‘Made in Daejeon’라벨을 붙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악기를 소외계층 아이들에게 연주하게 하는 가칭 ‘기적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일이다.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연주하는 대전만의 문화, 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구 대표. 오늘도 진정한 ‘Made in Daejeon’을 위해 자신의 꿈을 다듬고, 조이고, 칠하고 있다./온라인뉴스팀=이은미 프리랜서 기자
●구자홍 대표는?
목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를 졸업했다. 이태리 크레모나 IPIALL 국립현악기 제작학교와 이태리 ‘Lodi Scuola D‘Arte Bergognone’ 수리·복원학을 졸업하고 국내로 돌아와 2005년 현악기 제작 전시회 및 연주회를 대구와 대전에서 개최하면서 현악기 제작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최초로 현악기 제작·수리 관련 과목을 개설해 공주영상대 음악과 현악기 제작·수리 겸임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성남시립교향악단 인스트루먼트 닥터(Instrument Doctor) 겸 앙상블 벨 아르코 오케스트라 단장으로도 활약하며 자신의 꿈과 음악을 다듬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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