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택]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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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택]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는 법

[NGO소리]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금산문화원장

  • 승인 2011-09-07 14:12
  • 신문게재 2011-09-08 20면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금산문화원장
▲ 김호택 연세소아과병원장, 금산문화원장
며칠 전에 국제로타리와 관련된 강연에서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들었다.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영등포역 앞에 가면 술 한 잔 하고 인천 지역으로 퇴근하는 손님들을 모시는 소위 총알택시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3~4명의 손님이 차야 출발하는 것이 관례인데, 처음 혼자 온 손님은 조금 편한 앞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대신에 뒷자리가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어느 날 술에 취한 한 손님이 앞자리에 앉아 있는데 뒷자리가 차지 않아 오래 기다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취객 손님은 기다리다 화가 나서 운전기사에게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이놈의 '똥차'는 도대체 언제 출발하는거요?” 자신의 직장인 택시를 똥차라고 했으니 이런 말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이 기사의 대답이 걸작이다. “똥차는 똥이 차야 떠납니다.” 이 대화 끝에 손님이 웃고 말았는지 아니면 삿대질과 싸움으로 번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입으로 내뱉는 말일지라도 상대방을 찌른 송곳이 나에게는 훨씬 더 아픈 창상(槍傷)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올해 금산세계인삼엑스포는 금산으로서는 지역 경제의 명운을 건 건곤일척의 전투와 같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9월 1일에 있었던 개막식은 병사들의 출정식인 셈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충남도 전체가 나서서 인삼엑스포의 성공을 위해 뛰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금산사람들은 많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문제는 개막식 날 날씨가 엄청나게 더웠다는 것이다. 늦여름의 절정에, 그것도 가장 더운 오후 3시에 야외에서 개막식을 치르게 된 사유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대전 충남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귀한 손님들을 대접하는 금산 사람들로서는 여간 송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참석한 손님들로서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때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축사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올랐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했다. 안 지사의 첫 마디는 청중의 분위기로서는 의외로 “저는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정치인의 제스처'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리고 두 번째 나온 안 지사의 말에 내 기분도 좋아졌다. 안 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여름 내내 비가 많이 와서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했는데, 이 뜨거운 햇빛에 벼가 영글고 인삼이 습기를 털어내면서 쑥쑥 자란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무덥고 짜증나는 행사가 될 뻔했던 인삼엑스포 개막식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날씨가 시원해진 것은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시원해진 것이다. '기분 좋다'는 안 지사의 그 말이 노회한 정치가의 제스처였는지 아니면 멍이 들대로 든 농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도백의 배려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혹은 정치인 안 지사에 대한 호·불호에 따라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적절한 장소에서 이루어진 적절한 덕담이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금산인삼엑스포 개막식장에서 나는 확인했다. 그리고 '인삼엑스포는 반드시, 그리고 대단히 성공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나도 젊어서는 생각나는 대로 퍼부었다가 후회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반격을 당해 쩔쩔매기도 하는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말 한마디가 거꾸로 자신을 찌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힘든 사람들을 어루만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을 가려 하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말로 빚을 갚지는 못할지언정 애써서 벌어놓은 좋은 평판을 가벼운 입놀림으로 까먹는 일만은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인삼엑스포 개막식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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