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내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은 곧 조상의 정신이 나에게 이어졌다는 증거가 되니, 나를 통해서 조상은 영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나무의 기(氣)가 열매에 전해지는 것과 같다. 열매가 없어지지 않으면 이 살아있는 나무가 혹 시들거나 훼손된다 해도 나무의 기는 다시 생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간과할 것이 있다. 기(氣)는 마음을 따라서 출입한다. 『주역』건괘(乾卦)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同聲相應] 같은 기는 서로 구한다[同氣相求]'했다. 조상의 기는 자손의 신체 위에 있지만 서로 응하고 서로 구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으니, 내가 정성스런 마음으로 응해야 조상의 기가 나와 함께할 수 있지 내 마음이 응하지 않으면 조상의 기는 나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중용』에 신(神)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저 은미한 귀신이 밖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정성의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구나![夫微之顯이니 誠之不可掩이 如此夫인져]' 즉 귀신이란 정성여하에 따라서 출몰함을 말한 것이다.
율곡도 말하기를 “자손의 기가 부모의 유체(遺體)이므로 지성으로 제사를 지낸다면 조고의 혼령이 감동해서 흠향할 것이다. …꽃으로 비유하면 즉 삼동(三冬)의 달에 사람이 흙집[土室]을 지어 사면을 막아서 따뜻한 기[氤氳之氣]를 나오게 하면 꽃은 자연히 필 것이니 지성으로 조고의 령(靈)을 모은다면 무엇이 이것과 다르리요?”하였다.
제사는 이런 연유로 지내게 되었다. 제사를 지냄에 요즘에는 대개 지방(紙榜)으로 신위(神位)를 마련하지만 과거에는 신주(神主)로 조상을 모셨고, 더 이전에는 시동(尸童)을 세웠다. 말하자면 할아버지 제사에 신주처럼 세운 손자를 시동이라 한다. 손자는 바로 할아버지의 유체가 되고 할아버지는 손자를 통해서 흩어졌던 기가 다시 모이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의 제사에 대한 인식은 참으로 이같이 엄숙했다.
제사는 과거에는 사당을 지어서 받들었다. 사당을 뜻하는 묘(廟)자는 엄호(广)변에 '아침 조(朝)'자를 썼다. 해와 달이 만나는 때가 아침이니 조상과 후손이 만나는 곳이 사당임을 묘사한 글자다. 그런데 묘(廟)는 '모습 모(貌)'자로 뜻을 새겼다. 고인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라는 것이다. 마치 살아 계신 것처럼 추모하라는 뜻이다. 정성으로 추모하는 가운데라야 조상의 정신이 계승되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냄에 있어 정성을 갖는 일이 중요하므로, 공자는 '죽은 사람 섬기기를 산사람 섬기듯 하고, 망자(亡者) 섬기기를 존자 섬기듯[事死如事生 事亡如事存] 하라'고 강조하였다.
공연히 섬기려는 것이 아니다. 제사는 내가 태어났음을 보답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근본을 생각해야하고 자신을 있게 한 근원된 이에게 보답의 예를 갖춰야 한다. 우리가 음식을 대할 때 태초에 이 음식을 만든 근원된 이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듯이 이 몸의 근원인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제사는 '생전에 미치지 못했던 봉양을 추모하고, 그 미진했던 효를 계승하는 것[追其不及之養而繼其未盡之孝也]'이라 했다. 이를 줄여서 그냥 '추양계효(追養繼孝)'라고도 말한다.
며칠 후면 추석이다. 추석은 단지 절사(節祀)요 제사가 아니다. 제사는 삼헌(三獻)의 예가 있고 축문(祝文)을 사용하지만 절사에는 축문은 없고 한 잔만 올린다.[無祝單盞] 제사가 아니므로 제수(祭需)는 간소할 수밖에 없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저 송편등 때에 맞는 음식을 올리면[獻以時食] 된다.
조상을 추모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성이지 제물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이 있는 곳에 조상의 기가 이르는 것이니, 이 가운데 수복(受福)의 상서로움이 자연히 깃들 것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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