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광활한 만주 벌판을 확보한 광개토대왕이 아닐까? 그런데 이 두 대왕에 버금가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왕이 있다.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이다. 의자왕에게는 '대왕'이란 수식어는 없지만 '삼천궁녀'라는 수식어가 있다. 의자왕과 삼천궁녀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사서 어디에도 삼천궁녀에 관한 기록은 없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1000년이 다 된 조선 중기 시인 민제인이 '백마강부'란 시에 문학적인 수식어가 처음 등장할 뿐. 그리고 일본 강점기 대중가요 '백마강'의 애절한 곡조가 식민지 조선의 비애와 백제 망국이 묘하게 어우러져 대중에게 역사로 각인된 것이다. 삼천궁녀는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삼천궁녀의 허구성을 아무리 강조하고 의자왕은 당시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이었음을 상기해도 우리 머릿속엔 삼천궁녀의 치마폭에 휩싸여 방탕하게 놀고 있는 장년의 의자왕이 그려질 뿐이다. 그것이 망국의 왕이 안아야 할 숙명이었던 것이다.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망국의 군주로 우리 머릿속 깊숙이 각인된 의자왕에 대한 오해와 편견, 잘못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실 의자왕은 본국 백제의 왕이 되기 전 열도백제의 천황(서명천황)으로서 아스카 문화의 창달을 실질적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아울러 본국 백제 대왕으로 등극한 후에도 잃어버린 대륙의 영토를 되찾고자 노력했던 매우 진취적이고 영민한 군주이기도 했다.
이 소설은 이런 역사적 사실과 배경을 바탕으로 백제 말기 대륙회복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지배 계급 간의 정쟁과 암투, 그리고 패망 후 열도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백제 백성의 삶, 일본 탄생의 미스터리를 재미있고 흥미롭게 담고 있다. 책에서는 백제 멸망과 의자왕의 진실, 그리고 일본 탄생의 비밀이 재구성됐다. 의자왕이 서명천황으로 일본을 다스렸고,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구원군을 파견했던 제명천황이 의자왕의 아내였다는 다소 도발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소설로만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서기 및 다수의 역사 사료들에서 그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천황가가 공주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에 와서 천황궁의 법도에 따라 제사를 지내는 것 역시 그 반증 중 하나다.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백제와 일본의 고대사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판테온하우스/지은이 우영수/1권 440쪽, 2권 456쪽/각 1만2800원
박은희 기자 kugu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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