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팀장 |
주입식 교육과 학업 스트레스, 취업경쟁. 인도사람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영화는 최고의 수재들만 다닌다는 ICE 공대 삼총사들의 좌충우돌 성장기를 유쾌하게 그렸다. '알 이즈 웰(All is well)'을 외치며 결국은 모든 게 잘되는 해피엔딩 영화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사실에 씁쓸함만 더한다.
당장 2학기 등록금 고지서를 받아든 우리 대학생들은 분노할 것이다. 촛불시위까지 벌였건만 반값 등록금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연간 등록금이 국공립 대학은 400만원, 사립대는 800만원이다. 서민들 입장에선 꽤 버거운 비용이다. 그럼 여기서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왜 굳이 대학에 가려는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좋은 직장에 취업할 수 없다. 설사 직장에 들어가도 임금에서 대졸자와의 차이를 감수해야하고 사회적인 멸시의 눈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10여년전 탤런트 박철이 오후 시간대 라디오 음악방송 DJ를 할 때였다. 한 청취자가 고등학교 학력으로 직장내에서 차별받는 사연을 보냈다. 박철은 분개하면서 “나도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전국에 계신 고졸자 여러분 우리 힘냅시다”라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박철의 익살스런 멘트에 한바탕 웃었지만 전국의 고졸자들은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7,80년대 군사독재 시절 대학은 시대정신 비판이라는 공통된 정서를 공유했다. 불의가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폭력이 횡행하는 세상을 모른 체하며 살아간다는 건 기만이라고 생각했다.
체제가 낳은 비극이든 개인적인 불행이든 '내 입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는 기형도의 불안한 속삭임을 외면하며 살 수 없는 시대였다. 취루탄가스를 마시며 곤봉 세례를 맞더라도 대학은 꿈을 꿀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IMF가 휩쓸고 지나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신보다 물질이 우선하고 국가보다 시장이 우선하는 신자본주의 체제로 바뀐 지금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자산가는 젊은이들이 선망의 대상이다.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자산가치가 2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벤처 1세대로 14년만에 거부가 된 김택진은 수재들만 들어가는 서울대를 나왔다. 김택진,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는 학생들에겐 '영웅'의 전형이다.
그들은 대학생들의 아이콘이자 목표지향점이다. 고 정주영은 농부의 아들로 보통학교를 나와 쌀집가게 점원으로 시작해 '현대'라는 거대재벌을 일궜다. 그는 지금의 사회시스템에선 불가능한 먼 옛날 신화속에서나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 역시 시장성을 확보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대학과 학생들은 경쟁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기업화된 대학, 지성이 산업화된 대학. 발표에 의하면 사립대 적립금이 1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창조적인 학문은 옛말이다.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며 성적경쟁의 의자에 앉아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대학을 나와야 무시당하지 않는 나라, 명문대를 나와야 대접받는 나라 한국. 김예슬 선언부터 연이어 자살한 카이스트 학생들, 반값 등록금 촛불집회 등 분노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대학은 미동도 없었다. 김예슬은 잊혀지고 카이스트 학사제도는 요지부동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약속한 반값 등록금은 단 일원도 깎이지 않았다.
부모세대로부터 학습 경쟁을 강요받아온 한국의 젊은이들은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다. 『88만원세대』저자 우석훈은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20대를 방치하면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다고 경고한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40대는 취루탄 냄새를 맡으며 허름한 주점에서, 삼류극장에서 치기어린 낭만과 순수에 사로잡혀 뜻모를 진리를 외쳐댔다. 학기 내내 데모하고 공부도 안하며 허송세월하며 보내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졸업하면 어렵지 않게 취직을 할 수 있었다. 미안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