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9월! 찬바람이 불면

  • 오피니언
  • 문화칼럼

[안과 밖]9월! 찬바람이 불면

  • 승인 2011-08-31 11:39
  • 신문게재 2011-09-01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사슴이 땅을 파는 달, 쌀밥 먹는 달,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달, 춤추는 달, 아주 기분 좋은 달…. 인디언들이 부르는 9월의 이름이 좋다. 모호크족(族)의 ‘아주 기분이 좋은 달’이 특히나 좋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주 기분 좋게 하기 때문이다. 9월은 다시 시작하는 자들의 처음임이 실감난다. 9월 하고도 1일. 중도일보 창간기념일이다. 기쁜 날! 좋은 날!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9월도 저녁이면 바람은 이분쉼표로 분다'는 시구가 있다. 한낮은 아직 무덥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성마르게 찬바람의 계절을 예감하게 한다. 인생의 50대는 가을, 수확의 계절이다. 60대는 늦가을이며 단풍의 계절이요, 70대는 초겨울로 낙엽의 계절이다. 늦가을이 오기 전, 찬바람 불기 전에 수확할 것들을 휘휘 둘러보니 꽤 된다.

올 여름을 돌이켜보면 분초 단위로 쪼갤 만큼 바쁠 때도 있었다. 엄살을 안 키우는 성격인데도 엄살을 부렸다. “꽃이나 피거든 만나세”, “풍엽(楓葉)이 만산(滿山)할 제 만나세”, “술이 익걸랑 만나세”, “찬바람 불면 만나세”. 1분 빨라진 벽시계 바늘을 바로잡으며, 도포자락에 시간을 거느리고 살았던 선인들의 아리송한 품을 그리워했다.

▶시간관념과 미적 감각도 고금이 다르다. 고려 시대만 해도 꽃 중의 꽃은 복사꽃이었다. 복숭아꽃 핀 곳에 이상향을 설정했다. 살구꽃도 귀히 여겼다. 고전에 '○○꽃 피면…' 하고 계획 잡는 일이 수다하게 나온다.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위아래로 네 살 연배까지 끊어 15인 시 모임을 결성한다. 다산의 형 약전, 채제공의 아들 홍원도 그 동인이다. 서로 만날 날을 정해 놓은 게 운치가 있다. ―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서늘한 초가을 서지(西池)에 연꽃이 구경할 만하면 한 번 모이고, 국화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겨울이 되어 큰 눈 내리는 날 한 번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꽃을 피우면 한 번 모이기로 한다.

▶비만 오면 술타령, 바람이 불어도 술타령하는 사람은 요새도 있긴 한데, 격은 좀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뜻 없이 찬바람 불 때로 치워둔 일이 많아 올 가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철쭉꽃 핀 뒤로 연기할까? 민심은 찬바람인데 정치인들만 후끈 달아오르는, 곧 개시될 선거 위밍업― '국화꽃 피면 출마 여부를 밝히겠다.', '매화가 절정일 때 결정하겠다.' 이런 사람 어디 없나.

얼마 전 이완구 전 충남지사(전 국회의원)가 정치활동을 재개하며 총선 출마 지역구를 묻자 “대전과 충남은 행정구역상 금이 그어져 있을 뿐”이라고 했다. '여건이 무르익으면 어디든 출마할 수 있다'로 해석된다. “아직 시간이 많다. 찬바람이 불면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장고 중임을 내비쳤다. '때가 되면 정치에 나서겠다'가 속뜻이다.

찬바람 얘기에 생각나는 자유선진당 변웅전 대표. 그는 국회 비교섭단체 홀대 문제로 잔뜩 열받고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찬바람 났으니 대통합도 멀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늘이 두 쪽 나도 교섭단체 구성” 운운했다. 대통합은 몰라도 소통합은 이뤘다.

▶정치의 99%는 말이다. 화려한 말발이다. 말 속에 뼈를 심는 정치인, 직설화법 아닌 빙빙 에둘러 말하는 정치인, 통역이 필요한 정치인도 있다. 정치인 서러워라 통역이 필요한 여성도 있다.(남자생활백서) “당신 무슨 생각해?”→'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줘.' “내 생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그랬다가는 당신과는 끝이야'. 노련한 바람둥이, 유능한 정치부 기자는 상황 전체를 캐치해 의미를 캐는 마술사들이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