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위원 |
드러난 것만으로 본다. 새 정당(정식 작명은 아니나 '자유선진당'이 유력)은 당 대 당 합당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충청권 정치 지형의 재편이라 부르기에는 실체가 좀 빈약하다. 우선 16석 선진당과 1석 국민련의 단순통합으로 보는 시각부터 극복해야 한다. “심 대표가 탈당했다가 복당한 것뿐”이라는 한나라당 강창희 대전시당위원장의 뼈 있는 한마디에도 '소통합'의 본질이 얼마간 녹아 있다.
이 말을 애써 부인하려 해도 2008년 2월 자유선진당과 국민중심당의 합당 기억이 이를 방해한다. 통합 스케일이 작다 보니 긴장감과 밀도가 떨어진다. 두 당 이외에도 군소정당 간 짝짓기는 활발하다. 선거가 임박했음인지 언어만 달리한 전쟁 상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통합 드디어 진보정당 창당을 약속했다. 보수 세력의 선진당과 국민련의 재결합도 비슷한 수준이다. 앞으로 잘될까? 예측과 다르게 결과를 보고 원인을 추정하는 '후측(後測)'을 써보겠다.
과거의 자민련을 통해 당의 활로를 후측하니 이렇다. 오늘 합당해도 자민련 수준의 캐스팅 보트 역할은 어려울 처지다. 맹주를 자처하는 충청권에서 한나라당, 민주당과 빅3 구도를 형성 중이다. 보수대연합에 대한 변웅전-심대평 두 대표의 생각은 편차가 난다. 소통합 이후 충청권 인사 영입을 통한 '중통합' 카드를 꺼내기도 전에 유일한 충북 교두보인 보은·옥천·영동 남부 3군은 이탈 조짐을 보인다. 지역당 이미지 강화, 지역당 한계 희석은 통합 당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게다가 군소정당끼리 제휴가 성사돼도 전국 정당화의 완결편은 아니다. 친박 진영인 미래희망연대 8석을 합쳐 25석이 되면 또 모르지만 지금 단계는 전망 아닌 희망이다. 정체성, 조직과 동력의 다양화, 전국화한 목소리 등에서 민노당에 처지는 조직적 열세를 만회한다는 전제에서의 로망이다. 동의의 환경, 합의의 재생산 없는 진부한 스토리라인은 더 이상 안 먹힌다. 합당으로 당장 정치 지형과 풍경이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명분, 비전, 인물 부재도 여전히 떨칠 수 없다. “왜 통합을 선택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민주당 충남도당의 가시 돋친 대꾸에도 답이 일부분 들어 있다.
이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정책정당”(심대평, 30일 YTN FM '출발대행진')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고립된 섬에서 나와 우리 정치무대에 아직 건재하는 박정희 패러다임과 김대중(+노무현) 패러다임에 맞설 패러다임을 찾아봐야 한다. 낡은 이념 대결이 아니다. 정치는 투쟁이고 투쟁에서 살아남으라는 의미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으로 대승한 힘은 사실에 입각한 전쟁이었다. 새 당이 사는 길 역시 사실에 입각한 정치에 있다. 헤겔처럼 말하면 충청권 통합 정당인지 아닌지의 판단이 아닌, 진정한 전국정당 실현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여기에 비난받을지언정 조롱받는 정당이 되지 말라는 마키아벨리 식 주문을 곁들인다. 어떤 상황에서나 500만 충청인은 지지하겠지 하는 귀납법의 허점을 직시하라. 비유하면 이런 경우다. 시계가 7시를 알리고 칠면조 먹이를 준다. 칠면조가 발견한 그 보편법칙은 7시 종을 땡 치고 칠면조를 잡아먹은 주인에 의해 무참히 반증되고 만다. 일생 보편법칙을 이루지 못한 러셀의 칠면조, 그리고 자기 최후를 제일 늦게 알아차린 공룡처럼 되기 싫은가. 그러면 그럴 가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무대 뒤쪽으로 사라진 정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민심을 몰랐거나 모른 척했거나다. 새 매뉴얼로 가치와 내용을 리셋하지 않아서 그렇다. 정치판에서 모든 것이 검거나 희지는 않지만 자민련도 그랬다. 정책 공조를 넘어 국회 교섭단체가 가능한 '대통합'이 성사되고도 합헌성, 공개성, 영속성, 진정성이 사라지면 언제고 역(逆)선택에 직면한다. 완전한 후측은 오늘 6차 회의가 매듭지어져 예고편 아닌 본편 영화가 나올 때까지 유보해야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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