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도 서산 사건과 공통점이 있다. 저항할 힘이 없는데도 누구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경찰서로 가자는 목소리도 동영상에 담겼지만 아무도 폭력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진 않았다. 이번 사례 역시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리된다. 하나는 시민의식 실종이다. 또 하나는 범죄 현장에 선뜻 나섰다가 가해자로 몰릴 수도 있어 방관자 효과를 부추겼다는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런 방관자적 시선과 행동이 폭력을 키운다. 지난해 지역의 도시철도 안에서 동남아 출신 외국인 남자에 쫓겨 아이를 포함한 승객이 공포에 떠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도 손길을 내미는 시민은 없었다. 서산과 성남의 버스 안 범죄 모두 법의 문제와 함께 남의 어려움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현대사회의 문제가 내재돼 있다. 게다가 상대가 폭력 피해를 주장하면 뒷수습하기 힘들다. 버스 운전기사가 성추행하는 남학생을 제지하다 입힌 상해로 실형을 선고받은 예가 그것이다. 호의를 베풀다 범법자로 전락하는 것도 시민의식을 기대하기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사례도 그 동일선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해 서울에서 유학생 3명에 폭행당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도 뉴욕의 사례에서처럼 구경꾼만 존재했다. 용기 있는 소수의 힘 못지않게 이를 방관하지 않는 다수의 실천도 필요하다. 방관이 당연시되는 사회를 심리학적 현상으로만 보지 말고 보완책을 세워야 한다.
다수 승객이 탄 버스 안에서 벌어진 서산과 이번 사건은 동일한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똑같이 사회적 인식의 결여, 나서기를 주저하게 하는 법적인 허점이 배합돼 있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이런 경우, 원인 제공자를 가중 처벌하는 한편, 구호자의 정당방위 범위를 쉽고 넓게 적용하는 법적 보완이 있어야 한다. 이 기회에 구조 불이행을 벌하는 착한 사마리안법까지 공론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제2의 성남·서산 사건은 언제라도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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