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에 발표된 피카소 작 '아비뇽의 처녀들'. 미술사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원근법에 구애받지 않고 하나의 면위에 뒤섞여서 처리됐다.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
필자는 사실 피카소 말고 스페인의 화가와 미술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스페인을 돌아보면서 필자는 스페인이야말로 인류 미술과 건축의 보고(寶庫)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당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건축예술이며 미술관이었고, 거리의 아주 오래된 집과 건물 역시 조형미를 머금고 있었다. 필자가 하루 머물렀던 말라가의 엘 그레코호텔 주위의 크고 작은 호텔과 집들 역시 하나같이 예술적인 감각을 뽐내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인채 피카소생가로 향했다. 20세기 살아있는 신화 피카소의 생가는 메르세드광장 골목에 있었는데 2층에 그의 가족사진을 비롯해 피카소가 활동했던 모습, 그가 만든 도자기와 피카소 부친이 그린 유화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작업실의 피카소. |
잠시 생각하다 맞은 편에 있는 로마시대 유적지와 이슬람성채를 보면서 문득 스페인예술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를 것이라는 상념이 스쳤다.
스페인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이 미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생각인데 과연 그러했다. 스페인은 유럽·아프리카·지중해·대서양 등 4대 문화권의 접점에 위치한 특수조건 속에서 이곳만의 특이한 혼합양식을 낳으며 발전해왔고, 미술 역시 특유의 혼합양식을 이루었다.
아울러 중세에서 18세기에 걸쳐 국교인 가톨릭과 밀접하게 연계되면서 맥락을 이어왔다. 또 17세기와 20세기에 스페인미술이 일대 발전기를 맞았는데 그 중심장르가 회화였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우리는 흔히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로 피카소(1881~1973)를 꼽는다. 피카소는 스페인의 화가이면서 또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는 인물로 살아서 이미 신화가 된 예술가다.
▲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된 고야의 '눈보라 속을 걷는 사람들(원제:La nevada). |
92년의 긴 생애 동안 피카소는 무려 5만여점의 작품을 남겼다. 무서운 예술적 열정과 긴 생애가 아니면 이 같은 엄청난 작품 수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피카소의 생가에서 본(그의 작품집 뒤표지에도 실린) 작업하는 모습의 피카소 얼굴에는 섬뜩한 광기가 느껴진다.
그가 살아생전에 이미 유명해 진 것은 끊임없는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기존 그림의 틀을 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그림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그려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느냐의 물음이 나오게 된다. 피카소의 경우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통해 사물을 구성해 나가는 예술혼을 그치지 않았다.
피카소에 대한 얘기는 이쯤하고 프라도미술관 편에서도 소개한 것처럼 스페인사람들이 꼽는 3대화가가 엘 그레코(1541~1614),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 프란시스코 데 고야(1746~1828)다. 이 세 사람의 화가들 역시 그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화가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들과의 만남은 필자에게 미술을 보는 또다른 눈을 일깨워주었다.
톨레도 산토토메성당에서 마주한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당시의 시대상뿐 아니라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포착해 표현한 그의 대표작이다. 그리스인이라는 뜻의 그레코는 출생지가 그리스의 크레타섬 인근으로 1577년 무렵 스페인 톨레도에 와 정착했고 톨레도성당의 전속화가가 됐다.
▲ 고야의 자화상. |
그레코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성당의 제단화, 제단건축 조각 등까지 많은 작품 활동을 했고 길쭉길쭉한 모습의 성인화는 말기에 가면서 더욱 그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번져 다소 괴기한 느낌도 주게 된다.
그레코이후의 또 한사람의 걸출한 화가가 근대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디에고 벨라스케스다. 그의 작품은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에 걸려 있다.
세비야 출신인 그는 1623년 세비야 재상(宰相)의 도움으로 펠리페 4세의 수석 궁정화가 겸 궁정관리가 돼 초상화·종교화·주방화 등을 그렸고 특히 일상적인 주제에 뛰어난 기법을 발휘했다.
그 역시 한 작품 한 작품을 새로운 실험의 장(場)으로 삼는 예술혼을 지켜나갔다. 그의 대표작인 '시녀들(Las Meninas)'은 미술사에 회자적인 작품 중 하나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어린 공주인 마르가리타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 여럿이 모두 주인공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만큼 벨라스케스의 터치가 원근법과 테크닉 모두 뛰어나기 때문이다.
맨 앞의 개의 조는 듯한 표정에서 이국적인 난쟁이여인의 모습, 거울속의 왕과 왕비 그리고 왼쪽에서 붓을 들고 있는 벨라스케스에 이르기까지 이 그림의 주인공은 비단 마르가리타공주 뿐만이 아니다. 한폭의 사진과도 같으면서 그림속 그림의 대상들은 관객과 얘기하는 것 같아 현대화가 100명이 뽑은 명화로도 꼽히고 있다.
▲ 스페인 산토토메 성당에 소장돼 있는 엘 그레코의 대표작중 하나인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장례식을 치르는 당시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
근대회화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의 생애와 예술은 3기로 구분되는데 그의 이 3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유화·벽화·데생 등 기법의 다양화는 물론 초상화·풍속화·종교화·환상화 등 광범위한 장르를 통해 18~19세기 스페인의 전 역사를 화폭에 담았다. 그림으로 스페인의 역사를 담았다고나 할까.
프라도미술관에서 마주한 '옷을 입은 마야', '옷을 벗은 마야'에서부터 그리스신화속의 신을 묘사한 '거인', '1808년5월2일', '1808년5월3일', '알바백작부인' 등을 비롯한 그의 그림은 단순히 손으로만 그렸다기보다 그의 내면적 철학을 짙게 담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야의 그림은 죽기 전에 보아야 할 100대 그림에 속한다. 실제로 고야는 화가로서의 영화를 누렸고 궁정화가라는 최고의 대우도 받았지만, 알바백작부인과의 사랑과 이별, 죽음에 이르렀다가 귀머거리가 된 고통과 나폴레옹군대의 침입에 따른 민중들의 고통, 가톨릭의 부패를 목격해야 했던 시대상으로 그 누구보다 삶의 고뇌에 몸부림쳤던 인간이기도 했다.
스페인 여행 동안 이 세 사람의 화가와 마주하면서 필자는 화가는 무엇을 그려야 하며 어떤 그림이 명화인가라는 우문(愚問)앞에 서게 되었다. 답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스페인 여행이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글·사진=조성남 주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