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겉과 속이 다른 그녀들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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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겉과 속이 다른 그녀들이 온다

결혼식 들러리들이 펼치는 소동극 감독:폴 페이그 출연:크리스틴 위그, 마야 루돌프, 로즈 번

  • 승인 2011-08-25 13:47
  • 신문게재 2011-08-26 13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줄거리-애니는 나쁜 남자에게 빠져 있지만 자기밖에 모르는 남자는 결혼은 생각이 없다. 불경기에 시작한 베이커리 사업은 망하고 비호감 룸메이트는 속만 썩이는 등 그야말로 되는 일이 없다. 애니는 절친한 릴리안의 결혼 소식이나 듣게 된다.

▲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여자들의 자존심, 참 무섭다. 절친했던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 시집가. 그런데 네가 수고 좀 해줘야겠다. 제일 친한 친구잖니. 들러리 좀 서줘.” 그렇다면 “그래! 축하한다 축하해. 당연하지. 서줘야지”, 쌍수를 들어 축하하고 멋진 결혼식이 되도록 물심양면 도와주는 게 친구의 도리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다른 들러리들과 누가 더 결혼하는 친구와 친한지 질투하고 다투고 급기야 접시(결혼식)까지 깨야 직성이 풀리는 건지, 원….

물론 여기엔 전제가 있다. 주인공이 '위기의 여자'라는 거다. 베이커리 사업을 쫄딱 물 말아먹고 만나는 남자는 그녀를 섹스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나쁜 남자다. 한마디로 주인공 애니는 '되는 일이 없는' 여자다. 그녀도 친구의 결혼식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되는 일 없는 그녀가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말썽이 생기고 일은 꼬이고 소동은 커진다.

그녀들이 벌이는 소동극의 수위는 꽤 세다. 지하철에서 할아버지 머리 위에 '토'를 하던 한국의 '엽기적인 그녀'는 명함도 못 내밀 판이다. 위 아래로 '용암처럼' 쏟아낸다. 세면대 위, 친구의 머리 위에 '토'를 해댄다.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코미디'다.

제작진과 출연진을 보자. 제작자 주드 애파토우는 너저분한 유머와 섹스코미디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웃기는 사람으로 꼽히는 남자다. 게다가 감독은 미드 '오피스'의 몇몇 에피소드를 맡아 웃음을 이끈 폴 페이그다. 애니 역의 크리스틴 위그를 비롯한 배우들은 미국 코미디 버라이어티쇼 '세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출신들이다. 영화가 쏟아내는 화장실 유머와 섹스 코미디가 어떤 수준일지 감이 잡힌다. 그녀들이 화장실로 달려가는 듯하면 꼭 심호흡하시길.

'웃기고 보자'고 만든 영화지만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의 묘미는 여성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데 있다. 쿨한 모습 뒤에 숨은 여자들의 질투심 경쟁심리 사랑 우정 자아찾기 등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낸다. 질투를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표출하는 그녀들의 몸싸움과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거침없는 대사들은 '여성스럽게' 보이려고 참느라 쌓였던 체증을 싹 날려버릴 듯하다.

“2~4년짜리 행복한 표정” 등 대사도 재치있고 역할에 썩 잘 어울리는 캐스팅은 영화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사고뭉치, 음식만 탐하는 밉상, 잿밥을 노리는 여우 등 결혼식에 한 명씩은 꼭 있지 않은가.

남자들, 특히 “우리 동네 어떤 여자 얘긴데…”하고 시작하는 여자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는 고개를 갸웃할 장면이 여럿 있다. 이런 숙맥 남친과 영화를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또 여친이 너무 예쁘고 천사 같아서 화장실에도 안 갈 거라고 믿는 순진 남친이라면 확 깨는 영화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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