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진 前 중도일보 주필 |
물론 패전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러니까 윤동주는 일제에 의해 죽었으나 일인들 손에 양명을 하는 묘한 운명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1917년 12월 30일 당시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서울 연희전문 문과(2년)를 졸업하고 일본유학길을 떠났다. 그러나 교토의 동지사대학 재학 시 불순분자라 해서 경찰에 의해 투옥된 후 옥사를 하고 말았다. 채 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처럼 20대에 요절한 그에게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을 남겼다. 처음에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으나 세월이 가면서 국내에서 인기가 치솟았다.
필자는 그간 윤동주를 인양한 일본의 양심파 지성들을 추적한 바 있다. 이부키고오(伊吹鄕)는 윤동주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화제를 모은 지성이다. 번역솜씨가 원작 못지 않게 유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기도 하다. 오무라 마쓰오(大村童夫) 와세다 대학교수인 그는 1985년 5월 14일 중국 용정중학교를 찾아가 윤동주 시집을 전하는 한편 그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 바람에 윤동주 명성은 용정 뿐 아니라 한국으로 파급된 것이다.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섬세한 안목으로 재평가한 인물이다. 그녀는 대화,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자신의 감수성 정도, 촌지=寸志, 시심을 읽는다 등의 저서를 갖고 있다. 도쿄 출생인 그녀에게 우리가 향의를 갖는 것은 공주, 부여를 주제로 한 한글나들이라는 저서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윤동주의 시세계를 대담하게 해부하고 있다. 1980년대 초 필자가 그녀를 찾아가보니 도쿄한복판 '이나리신사' 옆에 예쁜 2층 양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의 작품집 한글나들이(はんぐるへの旅)를 번역해서 팔아먹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 청을 선선이 받아들이며 메모지에 “'한글나들이' 번역을 수락합니다”라고 적은 후 수정도장을 찍어주던 여류시인…. 출판기념회 때는 꼭 참석해달라는 청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떠오른다.
풍만한 체구에 귀족 티가 흐르는 그런 시인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면 이바라기의 윤동주 평은 어떤 것인가. '돌아와 보는 밤'= 평소 '다치와라(立原道造)'를 좋아했던 윤동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서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정감은 서로 피아노의 선율처럼 흐르고 있지만 그 깊이는 윤동주 쪽이 한수 위라고 했다.
'다치와라'의 시가 음악처럼 부드럽긴 하나 핵이라 할 중심부가 허약하다는 지적이었다. 이에 비해 윤동주는 밑바닥에 힘이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섬세하다. 그리고 윤동주는 '쉽게 쓴 시'에서 부모님의 땀내 나는 학비봉투에 비해 쉽게 글을 쓴다는 건 사치라며 자책을 한다.
'또 다른 고향'은 윤동주가 24세 때 쓴 시로 3년 후에 다가올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예언하고 있다. 필자 역시 윤동주 발자취를 캐러 도시샤대학을 찾아간 일이 있다. 정문(수위실)에선 윤동주의 시와 선전물을 방문객에게 건네준다. 정지용 시인도 이 대학 출신이지만 인기는 단연 윤동주 쪽이었다. 이밖에도 윤동주 연구에 힘쓴 언론인이 있다.
니시닛퐁(西日本)신문 이데(井手俊作)부장이 그 장본인이다. 그는 종전(태평양전쟁) 50주년 특집물로 윤동주의 '빼앗긴 시혼(詩魂)'을 다뤘다. 그는 윤동주가 형무소 수감 당시 약물 주사를 맞고 미친 듯이 소리치며 몸을 꼬았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당시 규슈(九州)대학에선 전쟁으로 부족한 혈장 대용인 식염수 사용을 위해 생체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윤동주의 죽음과 무관치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데 부장이 그 연재물을 필자에게 보내주어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한다. 늦었지만 이를 한국 측 지면에 소화할 생각이다. 이데 부장은 후쿠오카 형무소와 동지사대학, 시다카모(下鴨) 경찰서, 국회도서관을 꽤나 찾아다녔다고 했다. 어떻든 윤동주는 요절했지만 그의 작품들은 격조 높은 것이라는 데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논쟁거리가 있다면 그의 시가 '저항시'냐 아니면 '서정시'냐 하는 점이다. 이 또한 한국문단이 챙겨야 할 숙제라 할 수 있다. 요즘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국민감정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윤동주를 발굴한 일본의 양심파 지성들은 요즘 어떤 표정일까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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